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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연속기획)13. 소위 종교개혁의 문제
작성자   :   강명수 등록일 2007-11-12 조회수 1007
13. 소위 종교 개혁의 문제


송양; 그 동안 가톨릭의 교리를 대충 들었습니다.

그런데 종교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당시의 가톨릭 교회의 부패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신부; 소위 종교 개혁에 관한 역사적인 사건을 여기서 일일이 다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만을 얘기하기로 하겠습니다.

물론 그 당시 가톨릭 교회의 일부 성직자들이 타락했습니다.

송양; 그래서 우리 개신교에서는 그 때 타락한 가톨릭 교회 앞에서

새로운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역사적인 사명을 느꼈다고 주장합니다.

박신부; 예, 잘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밝히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어요.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 당시 교회 일부 성직자들의 부분적인 타락이었지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의 타락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송양! 그 당시 가톨릭에서 가르친 교리상의 잘못이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송양; 그건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면죄부사건' 또는 '종교재판' 등등

가톨릭에서 너무나 지나친 일을 저질렀지요!

박신부; 송양, 우리 정신을 차리고 얘기합시다.

전번 소위 '면죄부'사건에 대해서 얘기할 때에도 말이 있었지마는 일부 몇몇

성직자들의 비행을 교회 전체에 연결시킬 수 없으며 더구나

그것이 가톨릭의 정통 고리와는 전연 관계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개신교 안에서도 가끔 목사님들의 재산 문제, 권력 투쟁,

신도 유도 작전 등등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가끔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도 또 개혁을 해서 전연 다른 교회를 만들어야 된다는

원칙을 주장한다면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문제는 마르틴 루터의 소위 종교 개혁은 근본적으로 그 각도와 측면이 엉뚱한 데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타락한 성직자들을 상대로 개혁을 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정통 교리를 자기 임의로 뜯어고쳐 놓고는 종교 분열을 조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 개 혁'이라 하지 않고 '종교 분열'이라고 표현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부 정치인들의 타락을 내세우고

민주주의의 자체를 제거하고 공산주의나 기타 다른 독재 정치를 내세웠다면

그것이 진정 가장 건설적인 개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송양; 정통적인 교리라니요?

박신부; 마르틴 루터는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교회의 기본 교리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어 왔어요.

루터의 신학 이론은 세 가지로 요약되지요.


첫째로 신앙의 규범은 성서뿐이고 또 성서는 자유 해석이라는 내용입니다.

이런 주장을 내 세우면서 교회의 교도권(敎導權)을 완전히 무시해서

전통적인 사도들의 가르침을 내동댕이쳤습니다.

저번에 성서에 대해서 말씀드릴 때도 얘기가 있었지마는

성서 자유 해석은 드디어 종교 분열의 종파주의만을 조장했을 뿐입니다.

같은 성서 구절을 놓고 저 목사님은 저렇게, 이 목사님은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붙이니

그 어느 것이 진정 하느님의 가르침인지를 분간하기 어렵고

그러니까 결국 많은 종파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성서 자유 해석이 저지른 결과는 한국에만 해도 지난번 문공부 통계에 의하면

개신교의 66종파, 세계적으로는 약 5백 종파의 개신교들이 난립하는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피 많은 종파가 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서로의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종파가 되었는데

그 모든 것이 다 진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개신교 신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했는데, 그분의 말에 의하면,

개신교의 종파 싸움에 환멸을 느꼈다고 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한 교리 안에 통일된

가톨릭에 와서 진정 참된 진리 위에 위로를 받았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실은 개신교 안에서의 종파심은 심각하지요. 남의 집안 얘기해서 죄송합니다.

송양; 신부님! 저희 목사님이 그러시는데 성서 해석은 각자 하되

성령의 가르침에 의해서 한다고 하시던데요?

박신부; 성령의 이름을 대는 목사님은 그래도 훌륭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아 성서 해석을 한다는데,

그렇다면 한 분이신 성령은 그 가르침도 같아야 되겠지요?

그런데 같은 성령이 왜 그렇게 서로 다른 성서 해석을 합니까?

성령이 型개졌다는 말입니까? 성령이 수백 개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송양; 그건 교파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요.

박신부; 송양이 성서를 읽을 때에 성령이 직접 그 의미를 가르쳐 줍디까?

많은 사람들이 환상에 빠져 있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서 말씀 잘못 알아듣고 구원의 길을 놓쳤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루터에 의하면 성서만이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라고 해서

성서 외에는 모든 것을 거부합니다. 개신교에서는 그렇지요?

송양; 성서 내용이 중요합니다.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박신부; 옳은 말씀입니다.

저번에 성서에 대해서 말씀드릴 때도 그런 얘기가 있었지만

가톨릭에서도 성서를 대단히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우선 성서 중심 그리고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성전을 중요시하고 나아가서는 교회의 교도권에 의한 가르침 이것입니다.

개신교에서도 성서에 없는 것을 많이 하고 있어요?

송양; 예컨대 뭔데요?

박신부; 개신교에 있는 권사니 집사니 하는 직책,

특히 요즈음 와서는 '명예'를 붙여서 주는 직책들 그리고 수십 종에 달하는 교회 헌금,

이런 것은 성서에 없습니다.

송양; 성서에 십일조에 대한 말씀은 있어요!

박신부; 예, 있습니다.


'십분의 인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마태 23, 23)


이 말씀 중에서 십일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정의 질서입니다. 자선 행위를 하면서 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송한 얘기지만 개신교 신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목사님 설교,

특히 부흥회의 설교의 기본 내용이 주로 돈 얘기, 십일조의 얘기라고 듣고 있습니다.

그 십일조가 정의롭게 사용되고 있는지, 정말 복음적으로 처리가 되는지 잘 모릅니다.

성서를 너무 자기 위주로 해석하고 성서에 없는 것도 적당하게

자신의 유익에 맞추어 하는 목회도 많지 않습니까?

송양; 신부님, 그 말씀에는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교회와 돈", 이 문제는 약간 심각한 것 같아요.

박신부; 죄송합니다.

돈이 많으면 부패가 따라오는 것이 원칙적인 이야기입니다.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성서 자유 해석은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입니다.

집을 찾아가는 데 길은 하나이고 정확해야 하는데,

구원으로 가는 길은 제멋대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까?

우리 구원의 문제입니다. 영원히 죽느냐, 영원히 사느냐 하는 인생의 가장 귀중한 문제입니다.

송양; 신부님 말씀을 듣고 보니 성서 자유 해석과 "성서만의 규범"이라는

설은 문제가 제기되는 것 같아요!

박신부; 둘째로 루터의 교리는 '신앙만으로 구원.'

이런 이론입니다. 인간의 어떤 선행도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로마 3, 28)

이 말을 인용하여 인간은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내 세우면서

야고보서에 있는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 26)

이 말이 극히 못마땅해서 그는 야고보서는 성서가 아니라고까지 했습니다.

이 얼마나 개인주의적인 신앙 태도입니까?

아마 그가 가톨릭의 신부로서 독신 생활까지 하느님 앞에 엄숙히 약속을 하고도

그것을 쉽게 팽개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미 이런 이론에 근거를 두었을지도 모릅니다.

소위 종교 개혁을 했다는 장본인인 루터가 가장 신성한 독신의 약속을 깨뜨리고

수녀와 결혼을 했고 그리고 세 번째로 그의 신학 이론으로

'인간은 원죄로 속속들이 부패되어 다시 재기될 수 없다.'고 했는데,

인간은 죄로 근본적으로 타락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선행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어쩌면 자신이 선언한 하느님과의 약속을 깨뜨리고 그것을 거룩하게 변명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송양; 가톨릭에서는 언제나 교권이니 제도니 의식이니

전통을 주장하는데 애초의 교회에는 그런 것이 없었고,

또 그것은 진정 그리스도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은 어떤 제도나 의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말씀을 통한 신앙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신부; 믿음이 중요합니다. 성서에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에서는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특히 믿음을 강조한 것은 유다인들와 지나친 율법 정신을 반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믿음을 강조했지만 로마서를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율법을 준행해야 함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할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받으나마나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율법이 명하는 것을 잘 지키기만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도 할례 받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보아주실 것이 아닙니까?.'(로마 2, 25-26)

송양; 뭐니 뭐니 해도 믿음이 제일 중요해요!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로마 3, 33)

박신부; 믿음이 중요해요!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송양; 그럼 또 무엇이 필요한가요?

박신부; 성서를 바로 읽어봅시다.

그리고 부분적인 성서 구절로 전체의 성서 뜻인 양 착각해서도 안 됩니다.

우선 믿음을 갖고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계명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했듯이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듯이

실천이 없는 믿음은 분명히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육체를 따라 살면 여러분은 죽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면 삽니다.'(로마 8,13)

'여러분은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죽이십시오.

음행과 더러운 행위와 욕정과 못된 욕심과 우상 숭배나 다름없는 탐욕 따위의 욕망은

하느님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진노를 살 것입니다.'(골로 3, 5-6)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 24)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루가 13, 3)

'첫째 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또 둘째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 29-31)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며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쓰시오.

거룩해지지 않으면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히브 12, 14)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1요한 5, 3)

보십시오. 사랑의 계명이 더 중요합니다. 송양! 개신교에 십계명이 있지요?

송양; 예, 있습니다.

박신부; 솔직히 말해서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정신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냥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주장입니다.

예컨대 '살인하지 말라.'라는

5계명에서 천주교에서는 자살이나 낙태를 크게 중죄시 합니다.

개신교에서 낙태나 자살에 대해서 얼마나 강조합니까?

송양; ?

박신부; 이상 말이 나왔으니 . 성서에 이혼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제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 .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 5-6)

분명히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은 사람이 갈라놓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이혼도 큰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그런데 "믿음"만 있으면 되는데 왜 그렇게 "십일조"는 강조합니까?

송양; ?

박신부; 성서에 분명히 이혼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십일조"는 구원과는 별로 관계없는 것입니다.

송양; 십일조는 하느님에게 바치는 것인데 ?

박신부; 훌륭한 믿음은 있는데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까?

그렇다면 개신교에서 말하는 '믿음만으로 구원'이라는 교리에는 모순이 있지 않습니까?

송양; 똑바로 얘기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박신부; 이건 중요한 "구원"의 문제입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구원의 진리"를 터득해야 합니다.

낙태를 해도 괜찮고, 강간을 해도, 도둑질을 해도, 살인을 해도

"믿음"만 있으면 구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이 진정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까?

송양; ?

박신부; 말이 나왔으니 "믿음만으로 구원"이라면 교회에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집에서 개인적으로 믿음을 키우면 됩니다.

송양; 그건 아니지요. 교회에 나가서 선교 말씀을 듣고 믿음을 키워 나가야지요!

학생들이 학교 가서 선생님으로부터 지식을 배우듯이 말입니다.

박신부; 옳은 말씀입니다.

구원의 기본 조건이 "믿음"만이라면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믿음"을 키울 수 있습니다.

송양이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개신교 일부에는 "무교회주의자"가 있습니다.

송양; 그건 무슨 뜻인데요?

박신부; 개신교의 정신대로 성서만 있고 그것의 믿음만 있으면 구원이 가능하고,

집에서 개인적으로 성서를 읽고 깊이 예수만 믿으면 구원이 되니까

구태여 교회가 필요 없다는 주장입니다.

개신교의 가르침대로 "믿음"만으로 구원이 가능하다면 "무교회주의자"들의 말도 뜻이 있습니다.

송양; 그렇다면 천주교 신자들이 성당에 나가는 이유는 뭔데요?

박신부;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의 목적으로 세우셨고 목자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 주는 신권(神權)을 주셔서 성사를 집행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 주는 귀한 하느님의 제사(미사)에 참례하고

하느님의 몸인 성체(聖體)를 모셔서 구원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개신교처럼 순수히 예배만 바치는 교회와

성체와 제사인 미사 그리고 일곱 가지 성사를 집행하는 천주교와는 근본적으로 교회관이 다릅니다.

그래서 진정 구원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면 천주교가 주는 구원의 길,

그리스도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정통 신앙을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내 구원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개신교 형제들은 자기들의 편견만을 내세우는데 진정 구원이 무엇이며

그 구원을 전해 주는 교회의 사명을 다른 각도에서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하겠습니다.

송양; 어떤 각도에서요?

박신부; 지금 이 시간에 "인간 구원론"에 관한 신학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간곡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2천년의 교회 전통을 가진

가톨릭의 교리를 진심으로 한번 연구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시간 관계로 지금까지 송양과 이야기한 것 다 그만두고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송양; 예!

박신부; 송양! 아까도 말씀드렸지 마는 전 세계에 5백여 종의 그리스도교 종파가 있는데

그 교회가 모두 구원의 진실한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송양; ???

박신부; 2+2=4라는 진리는 천고 만대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변할 수 없는 진리가 아닙니까?

이것이 미국에서는 6이 되고 한국에서는 4가 된다는 원리가 있다면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더구나 구원, 즉 영원한 삶의 길인 신앙의 진리를 이렇게 저렇게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 많은 교파들이 다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송양; 신부님! 신앙의 진리는 2+2=4라는 수학적인 진리와는 다릅니다.

박신부; 옳습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이야기가 가능합니다.

그것이 2+2=4라는 수학적인 증명이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성서를 손에 들고 얼마나 많은 사이비 종교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수백 종의 종파 중에서 어느 하나만이 진실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일 것입니다.

송양, 여기서는 어떤 고집이나 체면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 구원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송양! 가톨릭 교회에서는 인간의 구원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흑은 구원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송양; 글쎄요!

박신부; 송양이 속해 있는 교파에 구원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없다고 생각합니까?

송양; 그야 말할 것 없지요. 구원이 있지요.

박신부; 만일 제가 천주교에서는 구원이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송양; 글쎄요. 그렇게 질문을 하시니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없네요.

박신부; 먼저 진실한 마음의 자세를 가집시다. 구원 문제입니다.

어떤 개신교 신자들은 천주교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합니다.

송양! 만일 천주교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한다면 개신교가 이 세상에 나기 전

약 천 오백 년 동안은 전연 인류 구원이 없었던 시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송양;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박신부; 그 때에는 이 세상에 천주교밖에 다른 개신교 종파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송양; ???

박신부; 적어도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 구원 사업을 하셨다면

예수님의 구원은 일차적으로 천주교를 통해서 이루어졌을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천주교에 구원이 없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결국 허수아비였고,

마르틴 루터에 의해 인간 구원이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송양; ?

박신부; 송양! 내 구원의 문제입니다. 진실합시다.

이 세상을 다 얻어도 내 영혼 구원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성서에는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통한 구령이냐, 아니면 마르틴 루터를 통한 구령이냐?' 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루터는 성인도 성자도 아닙니다. 고작 '루터 선생'으로 통하는 극히

평범한 인간이었고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타락된 가톨릭의 한 신부에 불과합니다.

송양! 진정 생각해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루터 선생님입니까?

가톨릭이 그 당시 많은 스캔들을 주었던 타락된 교회였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구원의 교회를 악용한 일부 성직자들의 잘못입니다.

어찌하여 구원의 교회를 한 인간이 자기 임의대로 개조할 수 있었습니까?

그리고는 그 개조된 그룻된 종파에서만 구원이 있다고 합니까?

송양! 백 보를 양보해서 가톨릭에서도 구원이 있고

5백여 파의 모든 종파에서도 구원이 있다고 생각합시다.

그렇다면 그 믿는 신조가 다른데 어찌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진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이 그렇게도 멍청한 분입니까?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합시다.

개신교에서는 저마다 성서 해석을 성령의 가르침이라고 하는데 성령은 한 분이십니다.

성령의 가르침도 하나밖에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분열되었다는 것입니까?

예컨대 가장 중요한 성서 내용 중에, 저번에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성체 교리가 있습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요한 6, 53-54)

이렇게 명확하게 영생을 얻는 말씀을 놓고 개신교에서는 성찬식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이고

천주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진실한 몸과 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이고 하나는 긍정적입니다.

이 둘 중에 하나는 진리일 것이고 하나는 허위일 것입니다.

둘 다 진리일 수도 없고 둘 다 허위일 수도 없습니다.

이 귀한 영생의 진리 앞에서 우리는 다소곳이 겸손해야 합니다.

내 구원의 문제입니다. 송양은 어느 진리를 선택하겠습니까?

예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사제권(司祭權)을 주시어

당신의 진실한 살과 피를 축성해서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정통적인

천주교의 가르침과 타락한 천주교의 신부였던 루터의 가르침을 놓고서

어느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까?

우리는 어떤 체면이나 위선이나 개인 주관을 버려야 합니다.

인간 구원이란 진리 앞에는 어떤 편견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송양; 그렇다면 가톨릭에서만 구원이 있고 우리 개신교에서는 구원이 없단 말입니까?

박신부; 그것은 간단히 답변할 수 없습니다. "구원 신학"이란 딴 문제입니다.

이것을 더욱 깊게 알고 싶으시면 제가 쓴 책입니다만

"가톨릭 사상 강좌"를 참고하십시오.

여기서는 인류 구원의 신학적인 문제를 다를 시간이 없습니다.

많은 개신교의 종파 의식과 진실한 그리스도의 교회인

가톨릭 교회와의 근본적인 문제만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송양; 신부님, 솔직히 말씀드려 서 옛날에는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지를 못했습니다.

단순히 개신교 신자니까 이렇게 믿어 왔고 또 가끔 개신교에서 가톨릭을 비판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만 있었는데 오늘 신부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

박신부; 좋은 얘기했습니다.

어떤 개신교 신자가 교회당에서 목사님이 선교할 때 가끔 천주교를 치는 설교를 듣고는

"왜 그럴까? 무언가 천주교에 대해 열등 의식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무언가 천주교가 더 좋은 점이 있으니까 그렇겠지." 하고는

천주교 교리를 연구한 끝에 개종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예배당에서는 공식적으로 천주교를 치는 설교를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어떤 문제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특별히 교리 시간 이외에는 성당에서

설교 중에 남의 종파를 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어떤 사이비 종교가 나타나도 가톨릭은 태연 자약합니다.

왜냐하면 2천 년간 너무나 많은 이단과 싸워 온

베드로의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요즈음 한국에서 보면 성서를 들고 이상한 소리를 하고 나오는

사이비 종파가 일어나면 개신교에서 서로가 이단이라고 싸움질을 하는 것을 보는데 .

송양! 한국의 실정만 봅시다. 스스로가 '재림 예수'라하고,

스스로가 하느님의 사신이라 하며 ○○장로니, ××장로니 하고 일어나는데

그 모든 것이 다 예수님의 진실한 교리를 믿는 올바른 그리스도교라고 할 수 있습니까?

송양; 아니지요

박신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아니라고 합니까?

그렇다면 송양이 속해 있는 그 개신교도 진실한 그리스도의 교리를 믿는 참 종파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있다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까?

송양이 주장하는 같은 근거를 두고 사이비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들고 나오면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송양; ?

박신부; 송양! 제가 가톨릭의 신부니까

아전 인수격으로 송양을 우리 교회에 끌고 오기 위한 방법으로만 생각하시면 퍽 혼란합니다.

오늘 우연히 송양이 저를 찾아 주셨기에 진심으로 진실 자체를 말한 것뿐입니다.

이런 기회에 한번 그리스도 교회의 진상을 그리고

구원의 근본 문제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송양; 그런데 신부님!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표현 아닙니까?

박신부; 그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표현이 아무리 정확하다고 해도 "절대자"를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용어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송양; 아니지요! 말이 중요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절대자 유일신을 믿기 때문에 오직 한 분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쓰는 "하느님"이라고 하는데

그건 기독교의 신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미신적인 신앙입니다.

박신부; 송양이 문제를 걸고 나왔으니 저의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우리 나라 말에서 숫자로 인격을 지칭하는 법은 없습니다.

예컨대 한 분이시니까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태양도 하나뿐입니다.

그렇다면 태양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할아버지도 한 분뿐이십니다.

우리 할아버지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집에 강아지가 두 마리 있습니다.

그것들은 "둘님"입니다. 병아리가 세 마리 있습니다 그것들은 "셋님"입니다.

송양! 그렇지요?

송양; 아이구 신부님, 어떻게 그렇게 따집니까?

박신부; 하나밖에 없는 "신"이니까 그분이 "하나님"이라면서요. 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한자로 표현해 봅시다. 하나 둘을 한자로 일(一), 이(二)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한자로 "일님"이 됩니다.

'일님 아버지시여 .' 그렇게 해 보세요. 그리고 개신교에서도 신(神)자를 쓰지요?

송양; 그래요. 신학교 또는 신학(神學)이란 말을 씁니다.

박신부; 이 신(神) 자야말로 귀신 신 자입니다.

원천적으로 이 신(神) 자는 기독교의 신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신(神)자는 쓰면서 한국의 전통적인 말,

하늘에 계신 절대자를 표시하는 "하느님"이란 말은 왜 외면합니까?

그렇다면 신학(神學)도 '일학(一學)'이라고 해야지요.

너무 고지식하게 일반적인 사고 방식은 대중의 공감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람"이란 말을 생각해 봅시다. 보통 쓰는 "사람"은 기독교적인 내용은 아닙니다.

진정 기독교적인 개념으로는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사람이란 말 대신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써 보십시오

대중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기독교인들은 우리와는 더불어 살수 없는 이방인들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송양; ? 그렇게까지 생각합니까?

박신부; 그러니 처음부터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용어에 대해서는 말을 그만두자고요.

천주교는 "개신교의 하나님"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데

개신교신자들이 괜히 이런 문제를 가끔 걸어요.

송양; 신부님, 감사합니다.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끝으로 가톨릭 교회의 참모습이라 할까 가톨릭 교회의 특징이라 할까,

가톨릭의 교회관을 듣고 싶습니다.



- 스테파노 -



다음에는

14. 가톨릭 교회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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