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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주임신부님 예비신자교리 3 : 불교, 유교, 그리스도교
작성자   :   남석우 등록일 2007-11-21 조회수 1143

불교

약 2,500년 전 오늘의 네팔 남쪽에 위치한 카필라 왕국의 왕가에서 태어난 석가모니로 부터 비롯된다. 석가모니는 인생의 무상(無常)과 고통스러움을 목격하고 깊은 회의에 빠진 후, 출가하여 오랜 세월의 고행과 정진 끝에 진리를 깨달아 불타(Buddha, 覺, 覺者) 즉 부처가 된다. 불교의 근본사상은 사성제설(四聖啼說)과 연기설(緣起說)로 요약할 수 있다. 사성제란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하겠다.

- 고(苦)= 인생은 온통 고(苦)로 가득 차 있다. 흔히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대표적인 고통으로 들지만, 그밖에도 싫은 사람과 함께 지내야 되는 것(怨憎會),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것(愛別離), 구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없는 것(所求部得)이 인생의 고통이며 인간 자체를 고(苦)의 원천으로 본다.

- 집(集)= 집(集)은 번뇌라고도 한다. 고(苦)를 느끼는 데는 원인이 있다. 마음속에서 번잡스런 갈등을 느끼기 때문이다. 번뇌 중 으뜸가는 것은 갈애(渴愛, 愛慾)와 무명(無明, 無知)이다.

- 멸(滅)= 인생의 모든 고(苦)는 일정한 원인이 있어 생긴 결과이므로 그 원인을 없애면 고(苦) 역시 없어진다. 주된 원인은 인간의 무지와 애욕이었으므로 이것을 이겨냈을 때 인간은 누구나 열반(涅槃) 즉 해탈(解脫)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 도(道)= 고(苦)를 없애는 데는 일정한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을 불타 자신이 그의 수행 방법으로 삼았던 "팔정도(八正道)"라고 한다. 올바로 보는 것(正見), 올바로 생각하는 것(正思), 올바로 말하는 것(正語), 올바로 행동하는 것(正業), 올바로 생활하는 것(正命), 올바르게 노력하는 것(正精進), 올바로 마음갖는 것(正念), 올바로 마음 정하는 것(正定)이 팔정도에 의한 수행 방법이다.

- 연기설(緣起說)= 연기란 구체적으로 인연연기(因緣緣起)를 말하며 인(因)은 직접원인, 연(緣)은 간접원인의 뜻이다. 세상 만물은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겨나고 없어진다는 뜻이다. 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 불타는 한 인간으로서 인간의 노력에 의해 진리를 깨달은 각자(覺者)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깨달았을 때 누구나 불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의 입장이다.

유교

유교는 고대 중국에서 발생한 실천 도덕으로서의 윤리관을 공자가 종합 발전시킨 것이다. 유교의 근본 목적은 수기치인(修己治人)에 있고, 중요 사상은 인(仁)과 예(禮)라고 할 수 있다.

- 수기치인(修己治人)= 말 그대로 나 자신을 다스리는 수양을 먼저하여 그것이 이뤄지면 점차 다른 사람들을 도와 모두가 의롭게 살 수 있게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나 혼자만 올바로 산다고 세상이 밝아지는 것이 아니고, 또 나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올바로 이끌 수는 없는 것이다. 우선 나를 제대로 키운 뒤 널리 베풀어 인류를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博施濟衆)이 유교의 기본 가르침이다.

- 인(仁)= 인(仁)이란 우선 사람다움을 말한다. 한 사람의 언행이 사람다울 때 인(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의미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愛人) 마음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사람답기 위해서는 그 언행에 거짓이 없고 믿음성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내 성의를 다하여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충서,忠恕) 가까이는 내 부모 형제로부터 멀리 온 인류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효제(孝悌)를 인(仁)을 실천하는 첫걸음으로 내세운다.

- 예(禮)= 예(禮)의 기원은 하늘(天,天帝)에 대한 제사에서 비롯되었다. 제사 의식을 행할 때 정결을 위해 여러가지 금기(禁忌) 사항이 있었는데 이것이 곧 예(禮)의 원형이었다. 이것이 점차 윤리의 차원으로 발전하여 작게는 개인 윤리 질서로부터 크게는 한 나라의 법규, 세계 질서에 이르기까지 그 의미는 매우 광범위하다. 예(禮)는 인(仁)을 행하는데 있어서 그 외면성을 강조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실성이 없는 예(禮)는 한갓 형식에만 치우친 허례허식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예(禮)란 사랑과 의로움을 내포한 행동규범이라 할 수 있다. 유교는 종교라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으나 성격상 종교적인 면을 갖고 있다. 이미 주어진 이 세상, 자연 안에서 현실 생활에 충실하기를 강조하고 실천을 중요시 한다.

그리스도교

일찍부터 현자들은 인간의 행복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찾아야 함을 깨달았다. 그 진리는 영원한 것이며, 유일한 세상과 인간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무한하신 절대자, 영원불변의 절대자만이 인간의 무한한 갈망을 채워주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분을 알 수는 없다. 다만 그 분이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가르쳐 줌으로써 (啓示) 우리는 배워 믿게 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우주의 신비와 인생에 관한 문제를 "창조주이시며 한 분이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대답해 주시고 가르쳐 주신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이라는 특정한 민족의 역사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셨고, 이 세상과 당신 자신을 더 분명히 가르쳐 주시려고 외아들을 보내셨는데 이 아들을 예수 그리스도라 한다. 하느님은 이 외아들을 통해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당신의 뜻을 알리시고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참 삶,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을 믿음으로써 인간은 불안과 고통과 죽음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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