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한 할머니께서 지팡이를 짚고 위태
롭게 걸어가고 계셨다.
허리도 구부러져 작은 키에, 한 손엔 지팡이를 한 손엔 비닐봉지에 싼 무언가를 들고
가고 계신데, 자칫 발이라도 헛디디시면 금방이라도 넘어지실까봐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망설이다 “할머니, 좀 도와 드릴까요?”했더니 괜찮다고 하셨다.
그래도 발길이 떨어지질 않아 “그럼, 이거라도 좀 들어 드려요?”했더니 또 괜찮다신다.
그런데 이윽고 계단을 다 내려오셔서는 비닐봉지에 싸인 무언가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는 그 위에 앉으시는 게 아닌가! 그건 그냥 짐이 아니라, 할머니가 가시다가 너무 힘들
면 바닥에 놓고 쉬시는 ‘간이 의자’였다.
손에 들고 다니시다 너무 되면 쉬시고, 일어나 또 다시 걷고 하시는….
미사를 마친 사람들이 몰려나오는데도 아랑곳없이 앉아 계신 할머니가 마음에 걸려
나는 다시 돌아갔다. 용기를 내어 “할머니, 댁까지 부축해 드릴까요? 댁이 어디세요?”
했더니 “가까워 여기서 조금만 가면 되” 하셨다
- 할머니 댁은 빠른 걸음으로도 10분 이상 걸리는 결코 ‘가깝지’ 않은 곳이었다 - 잠시
뒤 할머니는 “7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서 허리를 못 써. 당뇨로 눈도 멀었어.
그래서 아가씨 얼굴도 실은 잘 안 보여. 게다가 요즘엔 귀도 잘 안 들리고, 먹을 거 다
먹었어. 허허” 하셨다. “그래도 이만치라도 댕길 수 있는 게 감사하지. 나 같은 대죄인
을…” 하시며 일어나 또 걸으신다.
다른 사람은 순간에 할 수 있는 동작을 천 년이 걸릴 듯 느릿느릿 고되게 하고 계신
할머니를 따라 걷자니, 10미터를 못 가 또 그 의자를 놓고 앉으신다. “괜찮아, 이렇게
서너 번만 앉았다 가면 되. 그럼 집이야.” “모셔다 드릴까요? 정말 괜찮으세요?” 하는
제안엔 “누가 같이 가면 마음이 불편해서 안 돼. 부담스러워서. 아가씨, 말씀만으로도
고맙소. 허허” 하신다. 그러시더니 노래를 흥얼거리신다.
간간이 허리가 곧고 정정한 할머니들을 보면 “저만만 해도 쓰겄어. 저만만 해도 얼마
나 좋아”라며 진심 어린 푸념도 섞어 가시며….
얼마나 불편하실까, 얼마나 힘드실까, 얼마나 속상하실까…. 그런데도 저렇게 힘든
몸을 이끌고, 당신께는 천 리 길 같은 길을 걸어서 꼬박꼬박 성당에 나와 은혜받고, 감
사드리고, ‘이만치라도 댕길 수 있는 데 감사하다’ 말씀하시며, 비닐에 싼 의자를 들고
다니시면서도 노래를 흥얼거리시는 할머니를 뵈며, 진정 감사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감사하는 삶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그러면서 집에서 성당까지 뛰어가면 5분도 안 돼 갈 수 있는 거리에 살면서도 귀찮다
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변명하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리
슬쩍 넘어가고 갈까 말까 망설이며 유혹 앞에 나태해지는 내가 하느님께, 또 그 할머
니께 부끄럽고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겠다는… 참 은혜
받은 날이었다.
감사할 줄 모르고 사는 저에게 큰 감명을 준 내용이라 지난 주 주보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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