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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 "멋진 하나의 추억"
작성자   :   한용수 미카엘 등록일 2008-03-25 조회수 1238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알렐루야.”

 

   기쁨의 환호성이 온 누리에 퍼져 나갑니다. 아니 그 기쁨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체험해 보지 못한 예수님 부활의 위대한 사건을 어느 누가 인간의

지성이나 학문적인 논리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들조차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도 그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 8,27)

 

라는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베드로는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라고

 

응답한 바 있습니다. 그런 베드로였건만 지금 그는 빈 무덤이 주는 표징의 의미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믿음이란 살아 계신 예수님을 육안으로 보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질서에서 오는 것임을 지적해 줍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라는 말은 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려져 있었던

사실을 전해 줌과 동시에 제자들이 얼마나 심각한 혼돈상태에 빠져 있었는지를 잘 지적해

줍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오늘의 복음은 “보고 믿었다”(요한 20,8)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어떤 태도를 맞아들여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지적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습니다’라는 표현은 그분께서 생물학적인 생명을 다시 얻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분께 전혀 다른, 말하자면 새로운

 

형태로 실존하실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부활이란 그저 멋진 하나의 추억에 불과한 사건이 결코 아닙니다.

 

부활이란 깨닫고 받아들이고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할 현재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암흑의 실체를 체험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나아가 부활을 통해 승리에 동참할 수 있는 은총까지 우리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번민하며 괴로워했던 아픔의 시간들을 떠올려 봅니다.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는 불안했던 순간들도 되짚어 봅니다. 시기와 질투로 범벅된

 

자기 우월주의에 빠져 아집과 욕심으로 살아왔던 떠올리기조차 싫은 지난 시간들을

 

회상해 봅니다.

 

   먹구름이 뒤덮어 태양 빛을 전혀 쪼일 수 없는 순간조차도 실상 구름 위에서는

 

강렬한 태양 빛이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어찌 모르겠습니까마는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어리석음입니다.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아니하고 미래를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주님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보이지 않으나 우리 곁에 함께 계시고, 만질 수 없으나 우리와

 

함께하심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사건이 주님의 부활입니다.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 방황과 두려움도,

 

의구심과 좌절도, 실망도 용납지 않으십니다.

 

  오늘 다시 사심으로 우리 모두에게 찬란한 생명의 빛을 던져 주신 예수님을 믿고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와 용기 있게 그분을 따름으로 새로운 희망 속에서 당당하게

삶을 펼쳐가는 것이 부활의 기쁨을 선포 하는 삶이 아닐까요?

부활주일 주보에서(안병철 베드로 신부님,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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