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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9 대림특강 영상강의1 “내 백성을 위로 하여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   :   남석우 등록일 2008-12-04 조회수 1195

“내 백성을 위로 하여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2007년 명동성당 대림특강

 

- 위로받으려면 어둡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수도원으로 향하는 산길을 올라오면서 하늘을 봤다. 별이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랐다. 서울역이나 대전역에서 본 하늘과는 천지차이였다. 하지만 도심이건 산골이건 별의 숫자나 밝기는 같다. 별과 함께 낭만적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다. 도심을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에게 오실 찬란한 별인 구세주 예수를 뵙고 싶다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즉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성탄은 빛의 축제이자 기쁨과 환희의 축제지만, 영혼을 위한 것이지 육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대림시기는 이 땅에 태어나실 구세주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한 여행길이자 하느님의 충만한 위로가 흘러넘치는 은총의 길이다.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어두운 밤길을 가야 한다.

 

- 이웃을 통해 다가오는 하느님 위로의 손길

신학생 때 일이다. 수도원에서 승용차를 몰고 밖으로 나갔다 대형사고를 당했다. 폭이 좁은 길에서 택시와 정면충돌을 했다. 아무도 다치진 않았지만, 차량은 폐차장으로 보냈다. 밤 9시가 돼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원장신부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저 어깨를 두드리시며 '괜찮아, 배고프지?'하시고는 식당에서 손수 라면을 끓여 주셨다.

나는 그 신부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위로하시는 하느님 얼굴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언젠가 후배들이 그랬을 때는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원장신부님은 당신 존재 자체로 충만한 위로와 구원을 주셨다.

한 인간 존재가 이렇게 큰 위로의 원천인데, 하느님은 얼마나 더 좋겠는가. 구원이란 한 인간을 살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존재 자체로 인간을 구원하셨다.

 

- 더 큰 고통, 더 큰 슬픔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느님

얼마 전 정형외과 방문을 갔다. 환자 여섯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오토바이 사고로 팔이나 다리가 부러진 청소년들이었다. 그중 한 아이가 밤에 오토바이를 타다 큰 사고를 당해 다리 하나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이틀간 대수술 뒤 깨어난 아이는 자신의 상태를 보고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시련을 주시냐'며 약병도 뽑고, 몸부림을 치면서 꼬박 이틀을 울어댔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아이의 울음이 뚝 그쳤다. 비슷한 사고를 당한 한 친구가 들어왔는데 그 친구는 다리 두 개와 팔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순식간에 치유된 것이다.

누군가의 더 큰 고통 앞에 우리 고통은 쉽게 치유된다. 우리의 깊은 슬픔은 그 누군가의 더 큰 슬픔을 통해서 치유된다. 고통의 끝, 슬픔의 가장 극단에 서 계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 우리와 함께 걸어가시며 위로하시는 하느님

아동보육시설 책임자로 있을 때 한 아이가 있었다. 좋은 가정에서 자라던 아이였는데, 어느 날 부모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시설로 온 아이였다. 그런데 보통 지독한 아이가 아니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울기 시작해 이틀을 내리 울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울음을 멈춰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사흘째 되는 날, 이 녀석이 울음을 딱 그쳤다. 배가 고파서였다. 얼마 전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꽤 괜찮은 건설회사 직원이었다. 그는 '제가 울 때 옆에 계셔준 것을 평생 잊지 못해요. 부모님도 친척들도 다들 저를 버렸는데 신부님이 계셔줘서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 몰라요'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느님 아버지 명을 따라 우리를 위로해주시기 위해서다.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머묾으로써 우리를 위로해 주신다.

 

루카복음 7장 11~17절 나인 고을 과부 이야기는 하느님 위로가 피부로 느껴지는 구절이다. 이 복음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 모습의 본질은 바로 위로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슬픔의 원인까지도 없애주시는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가야 한다. 하느님의 따뜻한 위로의 손길을 더 진하게 느끼고 싶다면 우리는 작아져야만 한다.

 

(평화신문 2007년 12월 16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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