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트란 성서 이름은?
토비트는 제2경전 중에서 첫번째로 나오는 성서입니다. “이 책은 토비트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토비 1,1)고 책 첫머리에 밝혀져 있는 대로, 아시리아 왕에게 포로로 사로잡혀간 납달리 지파 사람 토비트를 둘러싸고 벌어진 이야기라 그 이름을 따서 책이름이 붙여졌어요. ‘토비트’는 ‘하느님은 나의 선하심’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으로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고 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선한 행동을 해왔던 토비트의 성품과, 하느님의 선하신 배려로 눈을 뜨게 되었음을 잘 나타내 주는 이름이지요.
누가 썼나요?
유다인 중의 한 사람이 썼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가 없어요. 사마리아인이니, 사두가이파 사람이니, 꿈란공동체의 일원이니 하는 의견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학자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집필 장소에 대해서도 이집트, 페르시아, 메대, 아시리아, 팔레스티나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합의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어요.
언제 썼나요?
책 내용은 기원전 7세기의 일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리적인 위치나 역사적인 인물을 잘못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많아서, 기원전 7세기나 5세기경에 집필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모세 율법’이나 ‘모세의 책’(토비 6,13; 7,11. 12. 13)과 같은 구절은 역대기(2역대 23,18)가 작성된 이후에나 가능한 표현일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토비 13,9-18; 14,5-6) 토비트 저자가 기원전 1세기 말에 헤로데에 의해 완공된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나아가 기원전 1세기에는 거의 통용되지 않았던 친족간의 결혼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개인적인 부활에 대한 신앙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원전 3세기 말이나 2세기 초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어요.
왜 썼나요?
올바른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록 어려움이 있다 해도 하느님께서 끝까지 돌보아 주심을 일깨우고자 했어요. 사람들의 흥미를 돋구기 위해, 죽은이들에게 선행을 베풀면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는 민담서부터 악령에 사로잡힌 신부 이야기, 모함에 빠졌다가 헤쳐나오는 충신설화 등을 모티브로 삼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세 율법에 기록된 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계몽하고자 했어요. 모세 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명절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첫 수확물과 가축의 맏배와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쳤던 토비트를 본으로 삼아, 죽은 이들을 묻어 주고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이 참 중요함을 일러주지요. 하지만 이렇게 올바른 삶을 살았다 해도 시련이 닥치지 않는 것은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부유할 때나 어려울 때나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참 신앙인임을 일깨우고 있어요.
유딧이란 성서이름은?
유딧은 제2경전 중에서 토비트 다음으로 나오는 성서입니다. 아시리아군에게 포위당한 요새 베툴리아를 구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주인공 유딧의 이름을 따서 책이름이 붙여졌어요.
누가 썼나요?
예루살렘과 성전을 중시하고 성전과 연관된 각종 희생제사와 봉헌물을 강조하며, 기도와 단식 등의 제사를 올리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마카베오 시대에 시행되었던 바리사이즘을 연상케 됩니다. 또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거너이 팔레스티나에서 펼쳐지고 그곳의 지리가 다른 곳의 지리보다 정확한 것을 보면, 팔레스티나에 사는 바리사이가 썼을 것으로 보여요.
언제 썼나요?
유딧서 안에는 헬레니즘적인 요소가 여러 곳에 언급되고 있어요. 화환이나 올리브로 만든 관을 쓰는가 하면(3,7;15,13), 식사할 때에도 비스듬히 기대서 먹어요(12,15). 왕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면서 왕에게 예배드리게 하구요(3,8).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대사제가 정치적·군사적인 권력을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4,6), 예루살렘 원로들이 다른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4,6.8; 11.14)에서 마카베오 시대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사마리아와 그 지역에 대한 예루살렘의 태도가 우호적이며(4,4.6), 사마리아 일대에 우상숭배가 완전히 뿌리뽑혔다고 단언되는 것(8,18-20)을 보면, 기원전 107년 그리짐산에 있는 사마리아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고 사마리아 지역을 유다의 통치권 아래에 편입시킨 요한 히르카누스 1세(기원전 135-104) 이후에 쓰여졌을 거에요. 하지만 알렉산더 얀네우스(기원전 103-78) 시절에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이 학살된 사건이 반영되어 있지 않을 것으로 보아, 이 시기 이전에 집필되었을 것으로 보여요. 더군다나 사두가이파나 에세네파에 반대하는 듯한 내용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아요.
따라서 바리사이즘이 형성되던 초기 시절에 해당되는 요한 히르카누스 시절에 집필되었을 거에요.
왜 썼나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약소국으로서 멸망하지 않고 생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다른 비상한 노력과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이 필요하지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종교 박해에 맞서 싸운 결과로 생겨난 하스모니안 왕조에 있어서, 사람들의 이러한 노력과 헌신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절실했습니다. 강대국 안에서 벌어진 패권다툼을 잘 이용해서 유다 왕국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키는 한편, 닥쳐온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될 시대적인 요청이 절박했던 것이죠. 따라서 이방인 군대에 포위되어 함락될 날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베툴리아 주민들을 구해내기 위해, 일신상의 작은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던 유딧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서 쓰여졌어요.
이 성서 이름은 어떻게 생겼나요?
에스델서는 역사적 배경을 빌어 유대인의 꿈 같은 소망을 그린 일종의 역사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의 여주인공 이름이 에스델인데, 그 인물의 이름을 따서 책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공동번역 성서의 “제2 경전”에 실려 있는 에스델서의 단편은 110절에 달하며, 히브리 성서에는 없고 그리스어 성서에만 있는 내용입니다. 에스델서는 히브리 성서 분류상 ‘성문서’에 속합니다. 그 중에서도 룻기, 아가, 애가, 전도서와 함께 축제 때 읽는 이른바 ‘축제오경’에 속하는 성서이지요. 에스델서는 부림절에 읽혀졌어요.
누가 썼나요?
누군지 알 수 없어요. 다만 추정컨데,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유다 공동체의 일원이 부림절의 근거로 삼기 위해 이 이야기를 꾸미지 않았을까 해요. 제2경전을 덧보태어 에스델서의 종교적 의미를 두드러지게 한 이는 퍽 세련된 그리스계 유대인일 것으로 보아요.
언제 쓰여졌나요?
에스델서는 페르샤 제국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아요. 즉 에스델서는 페르샤 시대가 아닌, 그 뒤에 쓰여졌음을 알 수 있지요. 또 마카베오 시대에 유대인들이‘모르드개의 날’을 지낸 사실이 언급된 것(2마카 15,36)을 보면, 기원전 50년경에는 부림절 축제를 지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런 점을 감안하면 에스델서는 기원전 2세기 전반부에 씌어졌다고 추정할 수 있어요. 제2 경전 부분은 더 늦게, 기원전 100년경에 생겨났을 거에요.
왜 썼나요?
에스델서는 성서 중에서 가장 유대 중심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에스델서(제2 경전 제외)에는 하느님이 명시적으로 등장하지도 않고, 부림절이라는 이방인 축제가 부각되어 있기도 하지요. 무엇보다도 이방인에 대한 대량 학살이 정당화되어 있어요. 그래서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에스델서를 정경으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가 몹시 치열하게 논의된 바 있어요.
그러면 에스델서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에스델서의 작가는 페르샤의 신년축제 설화 등 주변 이야기를 이용하여 부림절의 근거를 제시하면서, 이교사회에 사는 유대인의 민족의식을 깨우치기 위하여 이 소설을 썼던 것으로 보여요. 룻기도 그렇지만, 여기서도 하느님은 드러나지 않게 역사 안에서 당신이 예비하신 사람들 - 에스델과 모르드개 같은 이 - 을 통하여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당신의 일을 계속하시지요. 따라서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자기들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려 최선을 다하면서 그분의 도우심을 굳게 신뢰하고 참회하며 기도하면(4,1-3.16), 하느님은 그들을 통해 그 공동체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신다(4,13-14)는 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