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들은 교우들과 똑 같은 인간입니다.
오늘은 예수성심대축일이자 사제성화의 날인 입니다.
어제 내일은 꼭 첫 미사에 참례하겠다고 늦는 밤
잠자리에 들었지만 뒤척이다 잠 든 탓에 20분 전에
일어나 세수만 하고 헐레벌떡 뛰어 성당에 도착했지만
입당송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루의 시작이 힘들었지만 예수님의 사랑과 함께
사제들의 사랑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아침 이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 사랑과 함께 사제들도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랫 글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에서 옮겼습니다.
6월 15일 예수성심대축일(사제성화의 날) - 요한 19장 31-37절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친애하는 신부님들께>
수도회에 첫발을 들여놓던 시절, 당시 제가 지니고 있었던 각오나 목표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꼭 성인(聖人)이 되자. 성인이 되는 것이 제 유일한 목표였습니다. 하루 온 종일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주님께서도 그런 제 마음을 알아주셨던지 매일 주님 은총이 단비처럼 제게 내리더군요.
첫 서원을 하던 무렵, 목표치가 눈에 ‘확’ 띄게 하향조정이 되었습니다. 첫 마음이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 비록 많이 부족하지만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수도생활의 연륜이 좀 더 쌓이면 나아지겠지? 열심히 노력하면 성인(聖人)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사제서품을 받던 무렵, 부끄럽지만, 목표치는 더욱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인(聖人)은 힘들겠구나. 그렇지만 아이들과 신자들에게 내 삶을 나눠주는 착한 목자는 되어야지”라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세월이 좀 더 흐르면, 나이를 좀 더 먹으면...이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5년, 1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더욱 부끄럽지요. 요즘 각오는 “적어도 후배들에게,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말자. 어떻게 해서든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존재해야 할텐데...너무 비참하고 초라해지면 안될텐데...”하는 간절한 소망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거품이 제거된 제 모습은 참으로 비참하기만 합니다. 결국 의지할 곳은 하느님 밖에 없습니다.
사제로 살아간다는 것,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하지도, 찬란하지도 않습니다. 뭔가 신비롭고, 뭔가 특별한 그 무엇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제서품을 통해서 한 사제의 삶이 예수님의 목자로 거듭나지만,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지닌 나약함, 갖은 인간적 결함, 그간 받아온 상처, 앞으로 지고가게 될 십자가는 그대로 안고 사제생활을 시작합니다.
교우들은 사제들을 향해 초인(超人)을 기대하지만 우리 사제들은 교우들과 다름없는 똑 같은 인간입니다. 때로 휘황찬란한 세상의 유혹 앞에 맥없이 무너지기도 하고, 때로 너무도 부담스런 직무에서 훨훨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반복합니다.
그래서 사제들을 위한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사제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신자들의 열렬한 기도입니다.
사제들의 인간적 부족함 앞에 실망할 때도 많겠지요. 사제들의 나약한 모습 앞에 슬픔도 크겠지요? 그럴 때 일수록 더 열심히 기도해주십시오.
차별대우 받고 미움 받고 자란 아이의 가슴속에는 깊은 상처만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그 아이에게서 남을 생각할 줄 알고, 이웃사랑을 실천할 줄 아는 신앙인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매일 손가락질 받고, 밥 먹듯이 비난만 당하는 사제는 점점 하느님과 멀어져갈 것입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더 잘 사랑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받은 사제일수록 기도를 더 잘하는 사제,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한 평신도의 권고를 깊이 묵상해보았습니다.
“사제들이여, 여러분은 저희가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안내해주기 위하여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입니다.
왜 여러분이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우며 분노에 차 있어야 합니까? 왜 다른 목장으로 눈길을 돌리십니까? 여러분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되어야 할 바로 그것, 곧 우리의 친구이며 스승, 치유 자가 되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기대하시는 것, 곧 또 한분의 예수님이 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신원에 대한 걱정은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만족할 것이며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아닌 그 무엇이 되려는 마음을 더 이상 품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의혹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길잡이를 찾고 있는 혼란에 빠진 수많은 이들에게 평화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캐서린, ‘친애하는 신부님들께’,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참조)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