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성경읽기를 하고 있는 분들이 성경읽기에 한 마디 씩
합니다. 함께 성경을 읽으니까 집중이 되어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혹시 아직도 망서리시는 분이 계시면 한 주간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금요일 저녁 8시에 성경만 갖고 성당으로
오시면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혹시 저녁에 시간이 안되시면
목요일 오전 10시 미사 후,
목요일 오후 14시,
토요일 오전 10시에 성당 회합실로 오시면 됩니다. .
그리고 오늘 성경읽기는 열왕기 전서 입니다.
혹시 참고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아래 김혜윤 수녀님의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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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 상, 하 - 왕의 조건
연산군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는 영화가 한국 역사상 최대관객을 동원했다는 보도를 들었다. 대중이 그 영화의 무엇에 열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기존의식을 과감히 버리고 연산군에 대한 그리고 그의 남자와 여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그려냈다는 점이 새로웠을 것이다. 천하의 폭군이라고 매도되어 왔던 그를, 아주 비극적이고 슬프게 애처롭고 처연하게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쓸쓸한 아름다움으로 그려낸 것이 비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관객의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 ‘과연 어떤 것이 진짜 그였을까?’라는 질문이 남기 때문이다. 열왕기는 왕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성경이 제시하는 왕들의 모습이 실제적으로 그들이 고민했던 부분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열왕기는 왕들을 ‘하느님과의 관계’라는 신학적 관점에서 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열왕기를 살펴본다.
1. 명칭
히브리 성서에서 열왕기는 “왕들(의 이야기)”(מלכים)이라는 제목으로 되어있지만 칠십인역에서는 사무엘기와 함께 ‘왕국기’라는 하나의 책으로 간주되고 있다. 열왕기(列王記)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왕들의 치적을 나열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다윗 정치 말년에서 시작하여 1차 유배 때 인질로 끌려간 여호야킨이 특사로 풀려날 때까지(561년) 약 400년간의 역사가 소개된다.
2. 저자와 연대
탈무드 경전의 ‘Baba Bathra 15a’에서는 열왕기를 예레미야의 작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성서 비평가들은 신명기계 역사가들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열왕기가 최종 완성된 시기는 2열왕 25,27의 기록을 통해 추정할 수 있는데, 네부카드네자르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바빌론의 임금으로 등극하던 해, 유다 임금 여호야킨을 감옥에서 석방하는 내용(561년)이 제시되어 있다. 열왕기가 여호야킨의 석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이 책이 그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완성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키루스의 귀환칙령이라는 중대사건이 언급되어 있지 않아 키루스 칙령 반포(538년) 이전에는 책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듯하다.
3. 구조 열왕기 상(왕국의 분열) 1-2장 다윗 왕에 대한 짧은 언급 3-11장 솔로몬 왕의 번영과 암흑 12-22장 나라의 분열열왕기
열왕기하(왕국의 멸망) 1-17장 북이스라엘의 멸망 18-25장 남유다의 멸망
4. 열왕기의 편집
주로 왕들의 치세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열왕기는 각 왕국의 실록들을 근간으로 제작되었다. 이외에도 2차 자료로써 여러 소단위 단편 전승들이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① 왕조실록 : 열왕기의 저자(혹은 편집자)가 참조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는 1차 자료에는 ‘솔로몬의 실록’(1열왕 11,41)과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1열왕14,19), ‘유다 임금들의 실록’(1열왕 14,29) 등이 있다. 이 실록들은 북왕국과 남왕국의 대표적 왕조실록들이었는데, 두 왕국이 상호 견제, 대립하고 있던 상황을 기억한다면 이 두 실록이 한 사건을 동일한 관점에서 서술할 수 없었을 것임이 자명해진다. 6․25전쟁에 대하여 남측과 북측의 해석이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의 사건에 대하여 남과 북의 실록이 동일한 시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열왕기에는 연대기적 혼란이 자주 보이는데, 이는 실록 필사자들의 단순한 오류일 수도 있지만 쿠데타로 인한 정권 전복이 잦았던 북이스라엘의 경우, 두 명의 왕이 병존하는 경우도 있어서 생긴 혼란일 수 있다.
② 소단위 단편 전승들 : 열왕기는 왕들의 이야기에 그들 통치의 면모를 선택적으로 조명해 주는 작은 단편들이 삽입되어 있다. 예를 들어 스바 여왕 이야기(1열왕 10,1-13), 예언자 설화들, 즉 엘리야 설화(1열왕 17장-2열왕 2,12), 엘리사 설화(1열왕 19,19-21; 2열왕 2장-13장), 아히야(1열왕 11,26-40; 14,1-17), 예후(1열왕 16,1-4), 미카야(1열왕 22,1-36), 요나(2열왕 14,25-27) 등이 그것이다.
5. 왜 역사서 안에 예언자 설화가 삽입되어 있나?
열왕기의 이해를 위해 분명히 인식해야 할 점은 왜 역사서 안에 위에서 언급된 예언자들의 설화가 삽입되어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는 ‘예언’과 ‘역사’의 관계성을 매우 분명히 드러내 준다. 역사서 안에 예언자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제시된 하느님의 말씀이 역사적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완성되는지를 명확히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엘리사의 설화들은 기적민담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각 기적 사건들의 배후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신학적으로 입증하는 역할을 한다. 곧 하느님 말씀의 역사적 실현을 통해 그 진실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고, 이러한 모습은 동시에 열왕기 전체 메시지의 진실성과 정당성을 입증하는 역할을 한다.
6. 내용
열왕기 상권은 다윗 말년에 있었던 왕자들의 반란과 죽음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왕자들의 난은 넷째아들 아도니야와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의 대결구도로 좁혀지는데, 여기에서 기득권을 잡게 된 이는 솔로몬이며 이후 그의 치세가 시작된다. 어렵게 왕권을 계승한 그였지만 지나친 축첩제도로 인해 야훼종교를 혼합종교로 전락시켜 버리고, 과도한 건축사업은 유다를 재정적 파탄에 이르게 한다. 더욱이 공평하지 않았던 인재등용은 지파분열의 씨앗이 되는데, 한편 에프라임 출신의 예로보암은 아히야 예언자에 의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리라는 예언을 듣는다. 이 때문에 솔로몬은 그를 죽이려 하고 결국 예로보암은 한동안 이집트로 망명하여 살아간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자 평소 솔로몬의 미숙한 정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10개 지파는 예로보암을 중심으로 새로운 왕국(북이스라엘)을 건설하고, 이로써 남국 분열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보다 훨씬 넓은 영토와 인구를 가지고 있었고 군사력도 강력했으며 졍제 정치 외교적인 면에서도 우월했다. 그러나 남유다에 대한 인상이 우리의 인식 안에 더 긍적적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예루살렘의 시온신학을 중심으로 전개된 사무엘-열왕기의 내용이 남유다의 입지를 더 우세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그 정치의식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남유다가 다윗 왕조만을 인정하는 ‘왕조 고수의 원칙’을 표방하였다면, 북이스라엘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언제고 왕이 될 수 있는 ‘카리스마적 원칙’을 내세웠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잦은 쿠데타로 왕권이 교체되었고, 그만큼 사회적 불안감은 고조되었다. 더욱이 지리적으로 국외적 상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남유다보다 먼저 멸망한다.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할 때 아시리아의 속주로서 명맥을 유지했던 남유다는 결국 바빌론에 의해 멸망하고 유배의 긴 역사가 시작된다. 열왕기가 마지막을 여호야킨의 석방으로 마무리하고 있는 것은 신명기적 역사학자들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희망적으로 전망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7. 신학
① 왕에 대한 평가 : 죄에 대한 해석 열왕기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 신명기계 역사학자들이 본 ‘역사-신학적’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열왕기는 각 왕들에 대한 평가를 그들이 ‘하느님과 맺었던 관계’에서 찾고자 한다. 열왕기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묘사되고 있는 인물은 요시야이고, 가장 포악한 인물은 므나쎄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왕들이 보여준 정치력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종교적 관점으로 여과된 이해이다. 솔로몬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열왕기는 왕국 분열의 원인을 솔로몬의 실정과 종교적 배신으로 본다. 지나친 처첩관계와 그로 인한 우상숭배, 재정적 위기, 편파적 인재등용의 죄는 왕국의 분열이라는 심판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이 솔로몬에 대한 열왕기의 관점인 것이다.
② 유배는 죄의 결과 열왕기는 유배라는 비극 역시 야훼께 대한 불충실을 자행했던 왕들의 죄로 말미암아 발생한 사건으로 본다. 이스라엘이 처한 정치적인 위기에서 왕들이 고수해야 했던 것은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였지만 그들은 이러한 믿음을 갖지 못했고 주변 강대국들의 힘에 의존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강대국의 정치력을 빌린다는 것은 그만큼 그쪽의 문화와 종교를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는 원칙적으로 신뢰해야 할 야훼 하느님을 외면한 가장 큰 죄였던 것이다.
③ 계약의 궤, 예루살렘과 성전 열왕기는 예루살렘 성전 예배에 특별한 위상을 부여한다.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성읍이며(1열왕 8,12), 이는 성전봉헌 때에 솔로몬이 바친 기도(1열왕 8,23-53)와 요시야 개혁을 통해서도 거듭 강조된 내용이다. 따라서 단과 베텔 등 북이스라엘의 지방 성소에서 바쳤던 예배는 왕국에 총체적인 단죄와 심판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릇된 예배 역시 유배의 원인이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왕들에게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하나씩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 비밀스런 여백이 우리에겐 큰 매력으로 남아 있지만 그건 소설가나 영화감독들이 고민할 문제이고, 필자가 열왕기를 소개하면서 마지막으로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은 열왕기에 제시된 ‘왕(통치자)의 조건’이다. 그것은 ‘왕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과의 절대적 관계 안에서 그분의 모습을 닮아 있을 때 가장 완벽하게 신의 뜻을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이 정치가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이유는 정치가 ‘하느님을 닮아 있을 만큼’ 까다롭고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이러한 정치의 본질을 과연 우리 정치인들은 깨닫고 있는 것일까? 그저 씁씁할 뿐이다.
야곱의 우물에 김 베아트릭스 수녀님이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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