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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7 " 작은 벌레...."
작성자   :   한용수 미카엘 등록일 2012-08-28 조회수 2038

2012년 나해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를 실행해야만 했다. >

  
복음: 마태오 23,23-26



구세주      (6세기 경)

 

                          < 작은 벌레는 삼켜도 좋은가? >

        몇 번의 강론에서 저의 동기신부 아버지가 가스폭발 사고가 났지만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죽은 지 알고 영안실에 넣으려다가 숨을 쉬는 것 같아서 병상에 올려다 놓았는데, 지금까지 하느님을 떠나 산 것이 후회되고 성체를 영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한 번만 성체를 영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할 때, 성호를 긋지 않았더니 마귀들이 나타나 기도를 방해하였지만, 바로 성호를 그으니까 그 마귀들이 사라졌고, 그래서 기도할 수 있었고, 고 지학순 주교님께 안수 받고 다 타버린 코와 귀, 피부 등이 두 시간 만에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언제 어디서나 성호를 자랑스럽게 그었는데, 경험삼아 100억이 넘는 건축 프로젝트에 입찰을 시도하였을 때, 식사를 하기 전 혼자 성호를 그으며 밥을 먹는 이 아버지를 멀리서 유심히 보고 있던 공사주가 이런 사람이라면 믿을만하다고 여겨 공사를 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잘 성장하다가 정치판에 휘말려 회사가 부도가 나서 자살하려고 청산가리를 먹으려고 할 때 또 성호를 긋게 되어 신자로서 죽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열심히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성호를 열심히 그으시는 이 아버님은 목사님을 4분이나 개종시킬 정도로 열심한 삶을 살아가고 계시고 자녀도 사제로 봉헌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성호를 긋지 않는 것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성호가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사람들 앞에서 성호를 긋지 않는 것은 실제로는 하느님을 배교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시작과 끝에 성호를 긋지 않아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변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바지를 내리고 올리는 것을 생략할 수 있겠습니까? 작은 것 안에 모든 것이 들어가 있어서 큰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질타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그들이 십일조를 강조하면서도 더 큰 계명인 의로움과 자비, 믿음과 같은 것들을 무시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마치 작은 벌레들은 걸러내면서도 낙타와 같이 큰 것들은 그냥 삼켜버리는 위선과 같다는 것입니다.

 

저는 가톨릭교회가 자비와 사랑의 정신을 십일조나 주일을 지켜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십일조나 안식일의 계명 등은 너무 가볍게 여겨서 강조하고 있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대로라면 십일조는 작은 벌레에 비유되고 정의나 자비, 믿음 같은 것은 낙타에 비유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작은 벌레를 걸러내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성당에서 십일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어찌 보면 큰 것만 걸러내는 것에 치우쳐 작은 벌레들은 삼켜도 된다는 생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명품은 그 2%에서 차이가 납니다. 똑같은 두 요리가 나오는데 한 요리에서 날파리가 한 마리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본다면 두 요리 모두다 명품요리라고 하며 똑같은 마음으로 먹을 수 있겠습니까?

 

마라톤을 완주한 선수에게 리포터가 뛰는 동안 가장 힘들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물었습니다.

 

호흡입니까? 아니면 갈증 때문입니까?”

저를 힘들게 한 것은 호흡도 갈증도 아닙니다. 신발 속에 모래 알만한 작은 돌멩이 하나가 굴러다니며 저를 가장 힘들게 했습니다.”

 

세상엔 우리가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작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톨릭교회도 개신교에 뒤지고 있는 것은 인정해야 하고, 그들이 한다고 해서 오히려 역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합니다. 우리가 개신교 신자들보다 하지 못하는 것,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 십일조를 하는 것은 더 완전해지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술에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말은 없어도 술에 취하지 말라는 말은 많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술에 많이 취한 모습을 자주 보지만 그것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금육을 꼭 지키면서 사람을 미워하고 하느님을 의심하는 것보다는, 금육을 안 지켜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금육까지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해지려고 결심해야겠습니다.

 

위 글은 굿뉴스 우리들의 묵상(김혜진)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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