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사도행전은 어떤 책인가요?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함께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어떻게 다시 모여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열두 사도에 관해서는 약간 언급될 뿐이고 대부분은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행적입니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가 전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과 그 배후에서 온갖 역경과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줄기차게 말씀이 전파되고 교회가 성장되도록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증언하므로 ‘성령의 복음서’라고도 불립니다.
사도행전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박해와 내부에서 발생하는 위기를 통해 교회가 자라고 강하게 된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며, 교회를 올바로 이해하고 바라보도록 방향을 제시해 줌으로써 교회의 실체를 파악하게 해줍니다. 또한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그리스도 신자다운 생활 원칙과 복음 전파 방법의 규범을 제시하고, 말과 행동으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어떻게 증거해 야 할지를 가르칩니다.
사도행전 내용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8개의 설교 내용은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 죽으심과 부활하심, 성령의 보내심, 구약 예언의 성취,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받기 위한 회개 등으로 신약 성경이 기록되기 훨씬 전부터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을 근거로 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전개된 사건들은 공간적으로는 예루살렘에서 로마(사도 1,8참조 : 전 세계-당시 정치, 경제의 중심은 로마였음)에 이르는 지역들이고, 공간적으로는 예수님의 승천에서부터 30여 년간의 일들입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복음서와 서간들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구원 사건의 정점인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이 일어난 곳이며,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한 곳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교회는 선교활동의 중심지가 되어 모든 문제점들을 해결해 주는 어머니 교회의 역할을 수행합니다.(사도 15,4-29참조)
누가 썼나요?루카복음서를 쓴 사람이 썼다고 봅니다. 신약성경 중에 머리말은 루카복음서(1,1-4)와 사도행전(1,1-5)에만 있는데, 그 머리말에 등장하는 수신인이 모두 ‘데오필로’(‘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사도행전의 머리말에 첫 번째 책에 관해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을 뿐 아니라, 루카복음서의 끝부분과 사도행전의 앞부분이 예수님의 승천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두 책에 사용된 문체나 용어도 비슷합니다.
언제 쓰여졌나요?
루카 복음서의 집필연대를 70년 이후 80년 전 후반으로 추정한다면, 첫 번째 책에 이어 테오필로스에게 바치는 두 번째 책은 80~95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보면 무난할 것입니다. 하한 연대를 95년으로 잡은 이유는 루카가 자신의 두 저서 안에 당대의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의 문헌(93)을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연대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시대(81~96)와 맞물리는데, 사도행전과 루카 복음서 곳곳에서 이 박해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이상적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모습을 그린 2,42~47과 4,32~37입니다. 루카의 공동체 안에 박해로 재산이 없어진 가난한 신자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그들과 새로 입교한 이방인 신자들 사이의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자 그는 자신의 공동체를 진정한 친교의 공동체로 만들기 위하여 스승 예수님의 가르침에 입각한 초대 교회의 이상적인 나눔의 공동체상을 제시한 것입니다.
왜 썼나요?
사도행전은 기원후 30년부터 61년경까지의 초기 교회 공동체의 생활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책입니다. 사도행전을 쓴 저자의 주된 관심은 사도들이 아니며 그들의 생애나 행적도 아닙니다. 저자의 근본 관점은 예수님의 예언이 어떻게 실현되어 가는지 대략이나마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탄생에 이어,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이방인의 땅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며 교회를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근원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 성령의 도우심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교회 구성원들에게 당시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81-96년)의 황제숭배 강요 및 유다인과 이방인의 모함 등으로 시련과 박해를 받고 있는 현실에서 낙담하지 말고, 성령의 이끄심에 의탁하며 굳건한 신앙을 지켜 나갈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 사이의 빈부 차이 문제 및 유다계/이방계 그리스도인 간의 갈등 등 교회 내의 문제를 초대교회 공동체의 생활을 모범 삼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생활상과 베드로와 다른 설교가들의 설교를 통해 교회의 이상형을 제시하고 이방인 사도 바오로의 사도적 생애의 줄거리를 말해줌으로서 예수님의 마지막 예언이 실현되어 나가는 것을 제시해 줍니다. (예루살렘을 출발지로 하여 로마를 종착지로 구성함)
어떤 이야기가 쓰여 있나요?사도행전은 루카의 집필 목적에 따라 구성되었습니다. 즉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 아니라 땅 끝까지 예수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다음에 이방인에게 전해집니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로 1-12장은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여 유다인들에게 말씀이 선포되어 가는 과정을 취급하고, 15-28장은 바오로를 중심으로 하여 이방인들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13-15장은 과도기적인 상황을 알려줍니다. 루카는 이러한 신학적 의도와 함께 지리학적 순서에 따라 사료를 배열합니다. 즉 1장-12장은 팔레스티나를 배경으로 예루살렘에서부터 안티오키아까지, 13-28장은 이방인 지역을 배경으로 즉 안티오키아에서부터 로마로 향하여 전개합니다.
서언 : 출발점 - 성령의 약속과 사명
1부 : 유다인들에 대한 복음 선포
1,12-5,42. 성령을 통한 예루살렘 교회의 탄생과 성장(공동체 생활)
성령이 임하자,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자렛 사람 예수를 다시 살리시고 주님으로 삼으셨음을 온 이스라엘에 선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도록 촉구합니다. 이에 많은 유다인들이 세례를 받고 새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룹니다. 신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친교를 맺고, 성찬을 거행하고 기도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고, 가진 바를 나누고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 한 마음 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신명나는 공동체생활로 교회는 온 백성의 호감을 샀고, 주님께서는 이 모임에 구원받은 사람들을 날마다 늘려 주셨습니다.
6,1-12, 26. 팔레스티나 영내와 인접지역에 선교 확장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의 선교)
교회 안팎에서 시련을 당하지만 계속적으로 성장해 가는 교회의 모습을 그려 주고 있습니다. 교회가 점차 커지면서 유다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자,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의 봉사에 전념하기로 하고 일곱 명의 보조자를 뽑아 신도들을 돌보게 합니다. 그 중 한 사람인 스테파노는 조상 때부터 예언자들을 박해하며 하느님을 거역해 온 유다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다가 순교하게 됩니다. 그 이후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닥치자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지역에까지 흩어져 복음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베드로는 현시를 통해 하느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아무런 차별없이 평화의 복음을 전하도록 이르셨음을 교회에 알려, 이방인을 향한 선교를 더욱 북돋웠습니다. 박해는 계속되지만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복음은 더욱 널리 퍼져갔습니다.
2부 : 이방인 등에 대한 복음 선포
13,1-15, 35. 바오로의 제1차 선교여행과 예루살렘 사도회의
(안티오키아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설교-과도기적 상황)
15,36-21, 14. 바오로의 제2차, 제3차 선교 여행
21,15-28, 31. 바오로의 투옥과 소송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바오로를 중심으로 당시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오로라고도 불린 사울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잡아들이러 다마스커스로 가던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빛 체험을 하고 회심하여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가 됩니다. 특히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참석하여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유다계 그리스도인의 주장에 대해, 이방인에게 행하신 주님의 표징과 기적을 증거함으로써 할례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베드로의 선언을 뒷받침합니다. 모함과 위기, 감옥에 갇히는 등 여러 차례 시련을 맞지만, 성령의 이끄심으로 세 번에 걸친 선교여행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곳곳에 교회를 세웁니다. 그 후 예루살렘 성전에서 체포되어 묶인 몸이 되었으나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여 우여곡절 끝에 로마에 들어가 복음을 전합니다. 이로써 루카는 승천하시는 예수님께서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하신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요?
전반부에서 루카는 먼저 1)초대교회가 누렸던 이상적 공동체의 삶을 묘사하고, 2)코르넬리우스 사건을 통해서 이 공동체가 이방인 형제들을 입교시킬 때 어떻게 유다교의 특권의식과 인종차별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알려줍니다. 후반부에서는 3)서로 다른 관습과 문화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녀야 할 올바른 태도와 그리스도교 복음을 다른 문화권 안에 심을 때 필요한 전략을 가르쳐줍니다. 그 다음으로 4)바오로의 삶을 선교사와 사목자의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5)유다인들과 로마인들의 박해 앞에서 교회를 변호하고 보호하는 호교론을 피력합니다.
1) 이상적인 공동체의 삶
루카가 그리는 초대교회의 외적은 모습은 역동적이고 압도적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이제 당당하게 세상에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선포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개종하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선교에 박차를 가하는 역동적인 교회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초대교회는 차분하게 내실을 다져나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전달되는 주님의 말씀을 충심으로 받아들이고 서로 가진 것을 나누며 성찬과 기도에 온 정성을 다했습니다. 말씀과 성찬과 기도 그리고 형제애의 나눔은 초대교회로부터 그 이후 모든 세대의 교회로 전해진 가장 중요한 유산입니다. 이 유산을 소홀히 하면, 교회는 아무리 외적으로 초고속성장을 이룬다 하더라도 속빈 강정에 불과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인간 차별의 극복
예루살렘 공동체의 핵심 요원들이 유다인들이었기에 초대교회는 유다교의 특권의식과 인종차별에서 벗어나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이 유다인들에게만 주어졌다는 유다교의 국수주의적 특권의식은 교회가 이방인들을 대거 영입할 때 선교의 최대 걸림돌로 부상하였습니다. 유다교인들을 이방인들로부터 인종적으로 선별시키는 할례의식과, 구원의 방법으로 인식되어온 율법에서 이방인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기 위해서는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였습니다. 그 계기가 바로 코르넬리우스 개종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베드로가 12사도단의 대표임을 감안할 때 새로운 구원 공동체의 범위를 구약의 선민 이스라엘인들로만 한정시키려 했던 예루살렘 모교회에 커다른 충격을 던져주었습니다. 루카는 카이사리아에서 코르넬리우스 가족들에게 설교하고(10,34-43), 예루살렘의 수구파 유다인들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보고한(11,5-17) 베드로의 입을 빌려 이 사건의 깊은 의미를 밝힙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속에서 평화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하느님의 뜻은 어느 누구도, 비록 사도단의 대표인 베드로조차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이제 이방인들은 유다교의 굴레를 거치지 않고 직접 그리스도교에 입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로 코르넬리우스의 개종은 이방인 선교에 예루살렘 모교회가 청신호를 보내기로 결정한 중대한 사건입니다. 이를 계기로 유다인 선교의 주역이었던 베드로는 선교의 무대에서 뒤로 물러나고 그 대신 이방인 선교의 주역이자 루카의 영웅인 바오로가 전면에 등장합니다.
3) 토착화의 원칙
하느님의 공평성에 바탕을 둔 구원의 보편주의와 맞물려 있는 문제는 복음의 토착화입니다. 이 문제는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한 문화권 안에 들어갈 때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토착화의 기본 원칙은 양보할 수 없는 진리 자체와 이 진리의 가변적 표현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첫 토양은 유다교였고 유다이즘에 뿌리를 내린 그리스도교가 그리스 문화권 안에 길들여진 이방인들을 받아들이면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 지도부는 사도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15,1-35).
베드로의 원칙적인 발언이 있은 후 야고보가 나서서 유다인들과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백성이 서로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실천적 지침을 제시합니다. 우선 야고보는 유다교를 거치지 않고 이방인을 그리스도교에 영입하는 일을 근본적으로 인정하나(19절) 거기에 부수적인 조건을 첨부합니다.(20절) 물론 이 조건은 절대적인 명령이 아니라 잠정적이고 지역적인 권고 사항입니다.
야고보의 해결책은 유다인들과 이방인들 양쪽 모두의 양해를 구하는 현명한 절충안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유다교의 굴레를 쓰지 않고 곧바로 그리스도교에 영입되는 것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의지에 따른 것임을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지시킵니다. 다른 한편 이방인 신도들에게는 그들이 비록 유다교의 율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유다교의 오랜 전통적 종교관습에 충실한 유다인들에게 혐오감을 줄 만한 행동을 자제해 줄 것을 호소합니다. 즉,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야고보는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이 평화로운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이방인들은 형제애를 발휘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편 바오로의 아레오파고스에서의 설교는 그리스도교를 다른 문화권 안에 토착시키는 과정에 있어서 필요한 전략과 원칙을 제시합니다. 그는 먼저 아테네 시민들의 종교심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후 그 종교심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줍니다. 이 설교에서 바오로는 아테네인들에게 생소한 구약성경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성경의 표현들을 성경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어 하느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바오로는 헬라적 용어와 사상 및 그들의 지혜문학을 도입하여 창조주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오로는 비록 명시적으로 이름을 밝히지는 않지만 하느님께서 세상의 공정한 심판자로 내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4) 위대한 선교사, 참 목자
삼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마치고 밀레토스에 도착한 바오로는 예루살렘으로 서둘러 떠나기 위해 에페소 공동체에는 들르지 않고 밀레토스에서 사람을 보내 그곳 원로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 앞에서 한 바오로의 마지막 고별설교(20, 18-35)는 루카가 그리던 이상적 선교사와 목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바오로는 천막을 만드는 비천한 노동으로 자신과 동료 선교사들의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온갖 시련과 눈물 가운데에서도 겸손하게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길을 따라 주님처럼 사슬과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님께 부여받은 소명의 여정을 끝까지 마치고 봉사직을 성실하게 수행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에페소 원로들을 떠나는 마당에 바오로는 참다운 목자를 잃고 방황하게 될 에페소 공동체를 걱정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원로들에게 자신이 그들에게 보여준 모범에 따라 약한 양떼를 잘 돌보고 그들에게 사심없이 봉사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바오로의 이 같은 설교는 요한복음에 실린 예수님의 고별사를 연상시킵니다.
이 설교에서 루카가 강조하는 양 떼에게 경제적 짐을 지우지 않으려는 세심한 배려, 복음에 대한 열정, 겸손한 봉사, 자나 깨나 눈물로써 다른 지도자들을 충고하고 걱정하는 마음, 약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돌보아주고, 주는 것을 받는 것보다 더 큰 기쁨으로 삼는 모습들에 나타난 참다운 목자 정신은 세기를 두고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 지도자들에게 커다란 귀감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5) 호교론
인종과 문화와 지역의 장벽을 넘어서 하느님의 구원이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된다는 구원의 보편주의야말로 사도행전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입니다. 이 대주제 다음으로 중요한 주제는 그리스도교의 호교론입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21,17-28,31)에는 루카의 호교론이 구원의 보편주의를 바탕으로 전면에 등장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루카의 집필 의도는 바오로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루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오로가 세계의 수도 로마에 도착하여 로마 권력의 방해를 전혀 받지 않고 그리스도교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면 루카가 그토록 부각시키려 했던 구원의 보편주의와 그리스도교의 호교론이 충분한 조명을 받은 셈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권위로부터 안전한 종교로 인정받은 이상,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느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로마로부터 온 세상 구석구석에 전파할 사명이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에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1,8)라고 하신 말씀에 이미 다 밝혀져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가장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루카는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의 삶을 생생하게 소개하면서 몇몇 문제들을 부각시킵니다. 그것들은 외적 팽창과 내실의 불균형, 빈부 격차, 인종과 관습과 문화의 장벽, 참다운 목자의 부재, 세상 권력으로부터의 박해 등인데, 이것은 교회가 존재하는 곳이면 언제 어디나 따라다니는 문제들입니다. 루카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딱딱한 이론이 아니라 진지하고 교훈적인 이야기들로 풀어나갑니다.
이런 문제들 이외에 우리 교회가 안고 있는 불합리한 교회 운영과 교권의 비민주적 남용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그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교회 쇄신의 모델을 마련하기 위해 사도행전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연구가 절실히 요청됩니다.
사도행전의 신학적 특성
1)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 드린 최초의 고백은 '주님'(Kυριοs)이라는 칭호였습니다. 이 칭호를 처음에는 역사의 주님, 곧 부활하시어 개선의 영광을 안으신 인간 예수를 의미합니다(1,6 참조). 그러나 이 인간 예수로써의 주님은 곧 이어 하느님의 오른편에 높임을 받으신 주님으로 고백됩니다(2,34~36 참조). 그리고 예수께서는 교회의 주님으로서 교회와 함께 게십니다. 이 교회는 주님을 믿고, 선포하고, 주님과 결합합니다(5,14 ; 11,24 등). 예수께서는 주님으로써 바오로를 부르시고,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파견하시며, 복음의 일꾼들을 격려하십니다(23,11). 그리고 바오로는 주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선포합니다(9,20 참조).
2) 초대교회가 직면했던 문제들을 전해줍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설교들은 초대교회가 직면했던 문제, 즉 이교도들을 받아들이는 문제를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어떻게 해결하였는지를 알려줍니다(15장 참조).
유다교 출신의 신자와 이방인 신자들이 섞여 있던 초대교회에는 두 가지 문제가 크게 대두됩니다. 첫째는 직접 구원과 상관되는 원칙상의 문제로, 사람에게 구원이 내리는 길이 무엇이냐는 문제입니다. 다른 문제는 실천상의 문제로, 특히 전례와 음식을 나누는 잔치에 함께 참석하는 데서 생긴 문제입니다. 유다교 출신의 신자들은 옛 율법과 자기네 관습 때문에 가리는 음식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인 신자들에게는 이런 규정이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의견충돌과 논쟁이 벌어집니다. 결국 안티오키아 교회는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몇몇 신자를 대표로 뽑아 예루살렘에 파견했고 사상 최초의 교회회의가 예루살렘에서 열립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대되지만 않는다면 자신들의 관습을 고수할 수 있다고 가르치면서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이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방인들을 받아들이고, 이방인들은 형제애를 발휘해 유다인들이 싫어하는 일을 삼가해 달라는 지침을 내립니다. 원칙적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되, 부수적으로는 이웃사랑과 양보의 미덕을 실천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이 가져다 준 하느님의 순수한 은총을 통한 구원은 믿어야 할 참된 교리로 제시합니다.
3)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생활을 전해줍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나누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2,42)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4,32).
① 사도들의 가르침
베드로 사도의 오순절 설교(2,14-37)에서 나타났듯이,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관한 증언(2,22-26)이 사도들의 가르침에 있어 중심 자리를 차지합니다. 다음으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을 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입니다. 결국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사도들 자신의 사상이나 삶의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전해주신 가르침을 전하는 것 자체를 말합니다. 이 사도들의 가르침은 모든 신앙인들의 삶을 방향 짓는 근본 바탕이 되었으며, 사도적 전승을 통해 교회 안에서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② 친교
‘친교’란 본래 우정을 의미하는 용어였지만, 사도행전의 저자는 함께 생활하며 함께 나누는 삶을 친교라는 말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동체 내의 궁핍한 이웃들과 가진 것을 나누는 행위를 친교의 행위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이들은 서로 형제로서 하나의 소유 공동체를 이루는 생활을 함으로써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③ 빵을 뗌
빵을 떼어 나누는 행위는 유다인들의 회식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회식이 시작될 때, 주인이나 그 모임의 주도자가 모두에게 빵을 떼어 나누어 주는 데서 비롯되었는데, 신약시대에는 ‘빵을 떼다’라는 표현이 성찬예식 전체를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성찬 예식이란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체성사를 의미합니다. 초대교회는 ‘빵을 떼다’, 또는 ‘빵을 뗌’이라는 명칭 대신 ‘주님의 만찬’이라는 이름으로 성찬예식을 지칭하기도 하였습니다.
‘미사’라는 용어는 성찬예식을 가리키는 말로 500년경부터 쓰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용어는 성만찬의 폐회를 알리는 말이었지만, 후에는 성만찬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정착되었습니다.
사도들과 초대 교회 신도들은 주님의 명에 따라(루카 22,19-20 : 병행구절 1코린 11,24-25) 자주 이 예식을 거행했으며, 같은 동작, 말씀, 효과로서 이 신비스러운 빵 떼기를 되풀이하고 예수님으로 변화된 빵을 먹었습니다.
따라서 빵을 떼어 나누는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성사이며, 같은 의미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6-17)라고 증언하였습니다.
하느님께 바치고 나누어 먹는 이 빵, 곧 예수님의 몸은 희생을 바치는 사제와 그 제단과 희생 자체에 신자를 일치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비록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여럿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한 몸을 이루게 되며, 이로써 그들의 형제적 일치도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미사(성체 성사)를 통해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고, 예수님을 통하여 내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며, 예수님 안에서 다른 이들(신자들)과 일치를 이룸(한 몸)으로써 성체는 이런 일치의 몸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양식입니다.
④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성찬 때에 행해지는 공동체의 기도 안에서 공동체가 주님과, 또 상호간에 일치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성체 성사를 중심으로, 일치된 주님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가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그 공동체의 일원인 신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충실하였고, 가진 것을 나누는 형제애를 삶에서 실천하였으며, 성찬예식과 기도 안에서 주님과 일치하고 상호간의 일치를 이루며 살아갔습니다.
이는 신도들 개개인의 삶이면서, 동시에 공동체 전체의 모습이었습니다. 곧, 나와 너를 구별할 수 없는 하나 된 우리의 삶이었습니다.
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재산과 재물을 공유하였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이기적인 개인주의의 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신자들은 대가족이 된 것처럼, 할 수 있는 데까지 공동으로 생활하고, 너와 나의 구별이 없이 모든 것을 공동의 소유로 내놓았습니다.
주님의 성체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의 신도들은 ‘모두 함께 있으며 서로의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이 나눔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양을 분배하는 획일적인 나눔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는 증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눔의 기준은 각자의 필요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은 더 받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못 받으면 내 차지가 될 수 없다.’는 사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4) 전례의 원천과 교계제도를 보여줍니다.
세례와 성찬례, 안수례 등과 교회를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직제 등을 전해줍니다(4,33 ; 14,23 참조)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처음부터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것이 아닌 직계(職階)적으로 질서지워진 사회였습니다. 이러한 직계(職階)적 사회 안에서 개인과 집단에게 주어지는 권위는, 그 공동체 삶 안에서 특별한 임무와 기능이 부여되었습니다. 먼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독특한 방법으로 구분되는 집단은 사도단입니다. 베드로로 대표되는 이들의 원칙적인 임무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증거하는 복음선포이었으며 교회관리, 영적 지도, 성사집행 등의 직무도 맡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의식 안에서 공동체를 장엄함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세례를 베풀고 모임을 이끌며 구성원들에게 특별한 임무를 부여하기 위해 안수하기도 하였습니다. 즉, 사도단은 그리스도와 공동체 사이의 중재자들로서,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고 공동체를 세우는 권리를 지닌 것입니다. 한편 사도시대의 상부상조 경제구조에서 야기된 새로운 문제, 즉 식량배급에 있어 그리스계 유다인 과부들이 푸대접을 받고 있어 불만을 지닌 그리스계 유다인 그리스도교 신도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이들 중 스테파노를 비롯하여 7명을 뽑아서 기도하고 안수하여 사도 자신들의 권능의 부분을 전해주면서 그들의 조력자, 동료로서 세워 그리스계 신도들을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이들은 그리스계 신도들의 식량배급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설교와 세례 예식의 임무도 부여받았습니다. 특히, 스테파노는 유다인들과 신학적 논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필립보는 활동적인 선교사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고보로 대표되는 장로단도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부제단과 비슷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렇듯이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일찍부터 교계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교계체제는 지배적이며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봉사와 이웃을 배려하는 친교 정신에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5) 성령의 끊임없는 활동을 전해줍니다.
오순절에 내려오신 성령은 아버지의 약속을 실현시키면서 새 계약을 이루어 주십니다. 특히 사도행전에 제시된 성령은 죄의 용서나 세례의 효과로써의 영이라기 보다는 설교와 업적을 일으키는 외적이고 역동적인 힘으로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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