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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5 혹시 선교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작성자   :   한용수 미카엘 등록일 2014-08-28 조회수 2803

 

  아랫 글은 눗뉴스의 오늘의 묵상글( 2014. 8. 27) 중 요셉 신부님의 

  복음 묵상 글 내용으로 많은 신자들이 공유했으면 좋을 듯 해서

  이 글을 눗뉴스에 게재하신 김혜진 님의 양해를 구하고 이게섬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옮겼습니다.

 

  < 일하는 목적 > (마태오 23,27-32)

 

     오늘 수원교구 어떤 본당의 한 보좌신부가 이번에 교황님이 오시는 것을 계기로 자신의 성당에서 4백 명이 넘는 입교자를 받았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요즘 같은 때에 그렇게 많은 입교자를 받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몇 달 전에 그 본당 주임신부님이 교황님이 오시는 것을 계기로 무언가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그저 한 귀로 듣고는 한 귀로 흘려버렸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먼저 소공동체와 레지오 두 파트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소공동체 각 구역별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현수막을 설치하고 전단지를 돌렸습니다. 물론 그 성당 이름이 새겨진 물티슈도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 레지오는 상가나 가정을 다니면서 현수막과 전단지, 물티슈 등을 돌렸습니다. 이렇게 사용된 돈이 천만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신자들 모두에게 물티슈 세 개씩을 주고 각자 선교할 것도 권했습니다.

 

그리고는 교황님이 며칠 동안 한국에 머무실 때 본격적으로 입교자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입교신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언론에서 교황님이 대서특필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도 가톨릭에 대한 관심으로 크게 기울었던 것입니다.

 

교구 복음화국에서 일하고 있는 저로서는 이 운동을 전 본당에서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습니다. ‘그 신부님처럼 조금만 더 부지런하게 뛸 마음이 있었다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까!’라고 생각하니 주님께도 죄송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게으름으로 주위의 많은 영혼들을 잃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바오로가 게으름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무질서하게 살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합니다. 일중독이란 말이 생각나게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바오로가 일하는 것만 강조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항상 기뻐하십시오라고 하며,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가끔 동료 사제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사목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데도 기쁨을 못 느끼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사제의 길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과연 가정을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많은 일을 하며 살아왔는데 정말 기쁘고 보람스럽습니까? 기쁨이 없는 노력이란 열매가 없는 나무와도 같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작은 아들은 돈을 쓰며 흥청망청 놀았고 큰 아들은 일만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게 된 것은 아버지를 위해 쉬지 않고 일했던 큰 아들이 아닌 놀기만 했던 작은 아들이었습니다. 과연 큰 아들의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불교에서 가장 어리석은 여인을 표현할 때 물동이를 이고 땀을 흘리며 어디론가 계속 걸어가는 여인이라고 합니다. 일은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목적지를 모른다고 합니다. 계속 돌아다닐 뿐인 것입니다. 그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합니까? 그 목적이 명확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신이 한 모든 일이 헛수고였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작은 아들은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버지를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집에 머무는 것이 더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큰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를 원망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을 더 사랑하는 자녀를 원하시지 그렇게 일만하는 사람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일은 하인을 시키면 그만입니다. 우리가 일 하는 목적은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그래서 더 행복해지려는 목적이어야 합니다. 작은 아들은 행복했고, 큰 아들은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아들이 큰일을 한 것입니다.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도 일 하는 분이시기에 행복하신 분입니다. 마치 여인이 고생하여 자녀를 출산하면 기쁨을 느끼는 것과 같이, 결국 일을 하는 목적이 결국 나의 행복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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