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 글은 서율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의 요한 복음(15,9-11) 묵상 글 입니다. 교회에는 많은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봉사하는 분들은 무슨 보수를 받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봉사하는 마음에는 자신들의 봉사가 드러나기를 바라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누군가 나의 봉사를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해 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봉사에 점수를 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봉사를 하면 ‘사인’을 받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야 봉사 점수에 기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보속’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면 좋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보속을 한다는 것은 드러날 경우 나의 허물과 나의 잘못이 알려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봉사하려고 합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알아주시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하게 됩니다.
이 봄에 많은 생명에게 활기를 주는 물은 자신이 한 일을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 일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매일 우리에게 빛을 주는 태양도 짜증을 내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밝은 빛을 우리에게 줄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나의 공로를 알아주지 않을 때면, 말은 하지 않아도 속이 상하기 마련입니다. 초대교회는 몇 가지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점차 늘어나는 이방인 공동체들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방인 공동체는 유대인 공동체와는 다른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어가 달랐고, 음식이 달랐습니다. 그들의 사고와 철학도 달랐습니다. 유대인 공동체는 이방인 공동체들도 유대인들의 문화와 전통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공동체는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초기에 박해의 단초가 되었던 ‘제사논쟁’도 비슷한 문제입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모여서 첫 번째 공의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명확하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방인 공동체의 문화와 전통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신앙의 토착화’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전해지는 지역의 풍토와 전통에 맞게 토착화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도들은 이렇게 결정하였습니다.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선배 사제들은 이런 말씀을 하곤 하셨습니다. ‘새로운 곳에 가게 되면 먼저 6개월 동안 그곳의 전례와 그곳의 사람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먼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문제점이 있다면 천천히 고쳐나가야 합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전임자들이 하였던 일들은 한꺼번에 바꾸려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지 않고 성급하게 자신의 뜻대로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의 기준을 제시해 줍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남들에게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