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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 사순특강1 요약
작성자   :   남석우 등록일 2007-03-04 조회수 5413
지난 금요일 박순원 이냐시오 신부님의 강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더 자세한 것은 이전 평화신문 771호-780호 사목영성란에 실린 박순원 신부의 명동성당 기도학교 1-10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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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를 목적에 따라 구분한다면 청원·속죄·감사·찬미 기도로 나눌 수 있는데, 앞의 세 가지가 기도에서 요구하는 것이 충족될 때만 좋은 조건적 기도라면, 찬미 기도는 요구를 들어주든 안 들어주든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무조건적 기도다. 단순함의 기도는 그저 하느님과 함께 하기에 행복해지는 무조건적 찬미 기도다.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영성의 대가를 든다면 아빌라의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이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기도 단계를 ①구송 기도 ②묵상 기도 ③정감 기도 ④단순함의 기도 ⑤주부적 관상 ⑥고요 기도 ⑦일치 기도 ⑧순응일치 기도 ⑨변형일치 기도라는 9단계로 아주 분명하고 훌륭하게 분류한 바 있다.

 주님의 기도, 삼종 기도 등 입으로 하는 구송 기도는 기초인 동시에 중심이 되는 기도다. 구송 기도는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동시에 할 수 있는 장점과 분심이 들기 쉽다는 단점을 함께 지녔다. 하지만 구송 기도만 열심히 잘 해도 7,8 단계의 깊이까지 도달할 수 있다. 묵상 기도는 침묵 중에 마음으로 하는 하느님과 대화다. 이냐시오 영신수련은 이 묵상 기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정감 기도는 묵상 기도에서 한걸음 더 나간 것이다. 이를테면 세례를 받을 때라든지, 그리스도의 수난과 같은 영화를 볼 때 절절한 감동을 느끼고 눈물이 솟구쳐 오르는 것과 같이 자신의 정감을 다해서 드리는 기도다. 굳이 나눈다면 가톨릭은 구송 기도에, 개신교는 정감 기도에 강한 편이다.

 하지만 정감 기도는 자칫 감정에 너무 치우치기 쉬운 경향이 있다. 오래 지속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지나치게 감정에 몰입하다 보면 맹신적이거나 광적으로 되기가 쉽다. 아울러 정감 기도보다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간 단순함의 기도로 나아가는 데 정감 기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정감 기도를 거치지 않고도 단순함의 기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함의 기도는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단순하게 가만히 있는 것이고, 하느님 현존 안에 고요히 머무는 것이다. 정감 기도가 폭풍이라면 고요 기도는 폭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함이다. 예수 기도, 마음 기도, 향심 기도와 같은 가톨릭의 주요 기도가 바로 이 단순함의 기도와 연결돼 있다. 정감 기도가 시들해졌다고 해서 구송 기도와 묵상 기도 단계로 후퇴해서는 안된다. 단순함의 기도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어떻게 보면 불교의 수행은 이 단순함에 가장 큰 비중을 둔다. 더불어 신영성에서 주창하는 많은 수련법도 호흡에만 집중하는 식으로 지극히 단순하다. 이는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단순한 동시에 가장 보편적 수련 방법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단순함의 효과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이 가장 단순해지는 때가 바로 잠을 잘 때이고 일주일 가운데 가장 단순해지는 날이 일요일인데, 평소 잠을 잘 자고 또 일요일에 잘 쉴 때 일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례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단순함의 의미는 더욱 부각된다.

 아빌라의 데레사가 구분한 기도 9단계 가운데 이른바 수덕 단계에 속하는 ①구송 기도 ②묵상 기도 ③정감 기도 ④단순함의 기도를 정리해보자.

 인간을 크게 몸과 정신으로 나눈다면 입으로 외우는 구송기도는 먼저 몸에 가까운 것이다. 정신 영역을 지(知)·정(情)·의(意)로 구분할 때 생각이 주를 이루는 묵상 기도는 아무래도 知에 가깝다. 그렇다면 정감 기도는 情에, 의지적 요소가 강한 단순함의 기도는 意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함의 기도는 분심이 들 때마다 다시 단순함으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의지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단순성이다. 그리고 단순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반복성이다. 분심이 단순함의 상태를 방해할 때 다시 단순해지기 위해서는 그 단순함으로 되돌아오는 노력, 즉 처음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끊임없는 반복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단순함의 기도를 크게 예수기도, 마음의 기도, 향심기도로 나눠서 짚어보자.
 예수기도는 주님, 도우소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등 예수를 부르는 짧은 기도문을 소리 내거나 입술은 움직이되 소리는 내지 않고 반복해서 외우는 것이다. 기도 1단계인 구송기도에, 그리고 신자들이 흔히 바치는 화살기도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 예수기도는 점점 내면화하고 주의를 집중하기도 쉽게 된다. 나아가 기도하는 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인격 전체를 지배하고, 기도의 리듬은 점점 마음의 움직임과 동화돼 마침내는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된다.

 마음의 기도란 말과 생각, 상상을 제쳐둔 채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을 하느님께 열어 오직 사랑만 남게 하면서 하느님 앞에 깊은 내적 침묵으로 자신을 순박하게 두는 기도다. 이 기도의 초점은 사랑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랑 은 어떻게 표현될까. 수천가지로 표현될 수 있으나 그 어떤 것으로도 완전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기도한 후에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기도하는 동안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마음의 기도를 굳이 기도 단계로 설명하자면, 아직은 사랑이라는 정감이 남아있기에 ③정감 기도와 ④단순함의 기도 중간쯤이라고 보면 된다. 즉 단순화된 정감 기도이다. 인간인 이상 정감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이들, 특히 여성들의 기도가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기도를 할 때 예수기도→마음의 기도→향심기도의 과정을 밟게 된다. 예수 기도를 구송 기도와 같이 단순한 형태로 시작하지만 기도가 깊어질수록 이와 같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안 하고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쓸데없는 일에까지 정신을 쏟는 등 지혜롭게 살지를 못한다. 기도를 잘 하면 몸과 마음이 맑고 순수해질 뿐 아니라 매사를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지혜로워진다는 뜻이다. 사랑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지혜를 겸비하지 않은 맹목적 사랑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지혜가 꼭 필요하다. 더불어 기도를 잘 하게 되면 어떤 고통이 와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십자가 고통에 동참하는 은총으로 여길 수 있게 된다.

 여타 종교나 수많은 신영성 단체가 몸과 마음을 맑고 순수하게 하는 효과적 수련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걸음 더 나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사랑에까지 동참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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