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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신심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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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신심(信心) 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공경과 그 표현이다. 성모님에 대한 합당하고 올바른 신심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신앙 생활을 더욱 알차게 함으로써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바칠 수 있게 도와준다. 성모 공경은 근본적으로 신(神)인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 일체인 하느님을 지향하는 것이다.
{마리아와 관계된 신심들}
1.성모송(聖母請)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기도로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많이 바치는 기도 가운데 하나이며 신심 기도로 사용되고 있다.
성모송 첫 부분은 천사 가브리엘이 나자렛으로 마리아를 찾아와서했던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라는 인사말(루가 1.28)이고,
두 번째 부분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엘리사벳이 했던 “당신은 여자들 가운데서 축복 받았으며 당신 태중의 아기 또한 축복 받았습니다”라는 인사말(루가 1.42)이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후기에 덧붙인 청원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의 내용인 천사 가브라엘과 마리아의 대화(루가 1.26-38)는 초기부터 묵상의 주요 주제였다.
성모송 전반부가 합성된 기도문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의 [응송집]에서였으며, 성모 소성무일도에서 두 개의 인사말 이 암송되면서 수도원 공동체로 확산되었다.
이후 이 인사말 기도는 시편 150편을 대신하는 것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후반부의 청원 기도는 16세기초에 여러 수도회의 공식 기도로 사용되었는데, 1955년에 이 기도를 시간 전례에서 의무적으로 암송하도록 한 규정을 폐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송은 지금도 신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기도문이며 가장 많이 암송되는 기도이다.
2.묵주 기도
묵주기도를 의미하는 "로사리오(rosario)"는 "장미 꽃다발" 혹은 "장미 화관"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이를 "매괴", 혹은 "매괴 신공"이라고 했다. 묵주기도는 교회 초기 때 박해를 피한 신자들이 밤중에 몰래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면서 순교자들이 썼던 장미관을 한데 모아 놓고 꽃송이마다 기도를 한 가지씩 바친 데에 기원이 있다.
한편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 시편을 50편이나 100편, 150편씩 매일 외웠는데, 작은 돌멩이나 곡식 낟알을 둥글게 엮어 하나씩 굴리면서 기도의 횟수를 세었다고 한다.
12세기에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매우 깊어져 주의 기도 대신 성모송을 50번이나 150번씩 외우기도 했는데, 이를 15단으로 나누어 성모 영보, 예수 성탄, 예수 부활, 예수 승천 등과 관련시켜 묵상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묵주기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신심의 전파는 1830년 이후 성모님이 발현하여 묵주 기도를 열심히 바칠 것을 권고하면서 더욱 널리 퍼졌다. 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루르드(l858)·파티마(l9l7)·보랭(l932~l933)의 발현에서 묵주 기도를 특별히 권장하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3.가르멜의 성의(聖衣) 또는 스카풀라(scapulare)
1251년 가르멜회의 원장 성 시몬 스톡(Simon Stock 1165-1265)에게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갈색 스카풀라를 보여주면서 '이 스카풀라를 죽는 순간까지 착용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특권을 누릴 것이며, 그가 죽은 후 첫번째 토요일에 성모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천국에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특전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교황 바오로 5세의 교령(1615년)을 통하여 가르멜산의 스카풀라 특전을 인가함으로써 이에 대한 논쟁은 사라졌습니다.
스카풀라를 착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특전은 반드시 내적인 신심이 전제되지 않고는 효력이 없습니다. 외적으로만 스카풀라를 착용함으로써 특전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마술적이고 미신적인 신심행위에 불과하며, 자칫 교회가 가르치는 구원론에 위배되는 잘못된 구원예정설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스카풀라의 축복과 착의는 가능한 한 단체로 거행되어야 하며, 착의는 어떤 수도회의 제3회 회원이 되는 것을 의미하므로, 해당 수도회의 장상에 의해 이루어져야하고 예식서에 명시된 바를 따라야 합니다 .
4.기적의 메달
이는 "원죄 없이 잉태된 성모"에 대한 공경을 위한 것으로서 1830년에 성모 마리아가 성녀 가타리나(Catherine Laboure,1806~l876)에게 친히 계시한 것이다. (파리 발현) 1832년에 교회의 인가를 받아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라자로회(Lazaristae)의 사제들이 이 메달을 보급하기에 힘썼다. 가르멜 산 성모의 스카풀라와 기적의 메달은 준성사(sacramentals)에 속한다.
5.성모칠고(聖母七苦)의 로사리오
이 묵주 기도는 성모 통고(痛苦)를 묵상하면서 주님의 기도 한 번과 성모송 7번을 바친다. 성모 통고 신심은 6세기부터 동방교회에서 발전되었고, 15세기경에 7개 고통이라는 성모 칠고로 확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7개 성모의 고통이란
① 시므온의 예언(루가2,35)
② 이집트로의 피난(마태2,13-18)
③ 예수를 성전에서 잃음(루가2,41-50)
④ 예수 십자가를 짊(루가23,26-32)
⑤ 예수 십자가에서 죽음(루가23,44-46)
⑥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루가23,53)
⑦ 예수 무덤에 묻힘(루가23,53)이다. |
사적 계시와 성모 발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성모 발현은 성모 마리아가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방법을 초월한 특이한 방법으로 어떤 특정인에게 나타난 현상으로 교회에서는 여러 곳의 성모 발현과 그 발현 때 이루어진 사적(私的 )계시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사적(私的) 계시는 공적(公的) 계시의 진설성을 확인하고 재조명할 뿐만 아니라 변천하는 시대의 특수 상황에서 신앙이나 윤리에 관한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보조적인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적 계시가 진실한 것이 되려면 언제나 성서와 전승 및 교회의 가르침에 일치하고, 또 그것을 통해 교회에 유익을 주고 하느님의 영광을 증진시켜야 합니다.
사적 계시 및 이에 결부된 신비 현상에 지나친 관심을 가질 때 흔히 오류나 기만에 빠져 신앙 생활에 큰 해독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성모님의 발현 때 전해지는 메시지가 바로 사적 계시에 해당합니다. 이 사적 계시의 진실성을 증거하기 위해 흔히 기적이나 신비 현상 등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 메시지들이 복음 자체는 아닙니다. 교회 역시 그 메시지들이 복음을 대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모 발현의 어떠한 메시지라도 그것이 공식적인 교도권의 교의에 부합되어야만 진정한 사적 계시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과달루페]
1531년 l2월 9일 성모 마리아께서 멕시코 원주민 후안 디에고(Juan Diego)에게 나타난 후 모두 4차례에 걸쳐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이때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지 10년째 되는 해로서 원주민들은 정복자의 폭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발현 장소는 원주민들이 신전을 세웠던 테페약 언덕이었고, 성모님은 인디언의 피부를 하고 장밋빛 옷에 푸른 망토를 두르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으로 발현하였습니다.
성모님은 “나는 평생 동정이며, 하느님의 어머니임이 알려지기를 원하고, 어려울 때에 정성을 다해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자비를 드러내도록 이 자리에 성당을 짓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파리]
1830년 11월 27일 파리에 있는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지원자였던 가타리나(Catherine Laboure)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셨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가치관의 혼란으로 교회의 신앙이 흔들리고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는 등 사회의 변혁기였습니다.
성모님은 지구 위에 서서 두 팔을 활짝 펼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그 주위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이 모습대로 메달을 만들어 지니는 사람은 큰 은총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고, 그 후 메달 착용이 늘어나면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 ‘기적의 메달(Medaille miraculeuse)"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발현으로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신심이 고조되었으며, 마침내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8일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습니다.
[라 살레트]
1846년 9월 19일 프랑스 가르가스산 기슭에 있는 라 살레트(La Salette)에서 11세의 막시망 지로(Maximin Giraud)와 15세의 멜라니 마티유 칼바(Melanie Mathieu Calvat)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은 순백색의 부인복에 황금색 앞치마를 두르고 장미 술이 달린 망토를 어깨에 걸치고 장미관을 쓰고 계셨습니다.
당시는 과학 만능주의·자유주의·무신론 등으로 교회의 전통 신앙과 성서의 가르침이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죄인들의 화해자’라고 밝히면서 인류가 회개하여 하느님과 화해하면 축복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메시지를 무시하였으나. 1846년 이래 대흉년으로 유럽에서만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고 1870년에는 보불(普佛)전쟁까지 발발하자 회개하는 순례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루르드]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루르드의 동굴에서 14세의 소녀 베르나데트(Bernadette 1844~1879)에게 발현하셨습니다.
이때는 교황 비오 9세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반포한 지 4년째 되는 해였는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유주의 사상의 팽배로 지식층이 교회의 가르침을 불신하고 속속 교회를 떠나는 경향이 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모 마리아는 흰옷에 푸른색 허리띠를 두르고 오른팔에 묵주를 늘어뜨리고 양손을 가슴에 모은 모습으로 발현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을 "원죄 없는 잉태된 자’(Immaculata Conceptio)라고 밝히면서 기도와 보속, 회개를 촉구하셨으며 특히 묵주 기도를 권하셨습니다.
그 후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루르드를 방문하였고 기적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파티마]
제 1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달했던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6차례에 걸쳐 포르투칼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 파티마(fatima)에서 순박한 목동인 10세의 루치아(Lucia)와 루치아의 사촌 동생들인 7세의 히야친타(Jacinta)와 9세의 프란치스코(Frnacisco)에게 발현하였습니다.
발현 때마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흰옷에 흰 망토를 걸치고 묵주를 든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맨발로 구름을 밟고 선 모습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을 "로사리오의 여왕"이라고 칭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특히 러시아를 당신 성심에게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에 영성체 할 것을 요청하면서,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과 보속을 통해서만 세계 평화와 러시아의 회개 및 교회의 안정과 평온이 이루어지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1917년 10월에 소련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이듬해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며, 1942년 10월에 교황 비오 12세는 전세계, 특히 러시아를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에게 봉헌하였습니다.
[바뇌]
1933년 1월 15일 독일 국경에서 가까운 벨기에의 바뇌(Banneux)에서 비신자인 12세의 소녀 마리에트(Mariette Beco)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셨습니다.
당시는 독일의 히틀러가 정권을 잡 고 있던 때였는데, 성모님은 루르드 발현 때처럼 흰옷에 푸른 허리띠를 두르고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숙인 채 합장하고 오른팔에는 묵주를 늘어뜨린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을 "가난한 자의 동정녀"라고 칭하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러 왔다고 하면서 기도를 많이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수많은 성당이 바뇌의 성모님께 봉헌되었습니다.
## 이상의 성모님의 발현들은 모두 교회의 정식인가를 받았습니다. 이외에도 1928~1975년 사이에 발생하였던 성모님의 발현들 중에서 교회의 공식 인가나 동의를 받지 못한 발현은 230 여 건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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