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빈자리
아내가 어이없는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
지금도 아내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크기만 합니다.
스스로 밥 한 끼 끓여먹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남편을 두고 떠난 심정이야 오죽했겠습니까 마는
난 나대로 아이에게 엄마 몫까지 해주지 못하는 게
늘 가슴 아프기만 합니다.
언젠가 출장으로 인해
아이에게 아침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출근준비만 부랴부랴 하다가
새벽부터 집을 나섰던 적이 있었지요.
전날 지어먹은 밥이 밥솥에 조금은 남아있기에
계란찜을 얼른 데워놓고
아직 잠이 덜 깬 아이에게 대강 설명하고
출장지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있나요?
그저 걱정이 되어 몇 번이나 전화로
아이의 아침을 챙기느라
제대로 일도 못 본 것 같습니다.
출장을 다녀온 바로 그 날 저녁 8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이와 간단한 인사를 한 뒤
너무나 피곤한 몸에 아이의 저녁 걱정은 뒤로 한 채
방으로 들어와 양복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침대에 대자로 누웠습니다.
그 순간, '푹!' 소리를 내며
빨간 양념 국과 손가락만한 라면 가락이
침대와 이불에 퍼질러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펄펄 끓는 컵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 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무작정 불러 내
옷걸이를 집어 들고
아이의 장딴지와 엉덩이를 마구 때렸습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이불은 누가 빨라고 장난을 쳐, 장난을!'
다른 때 같으면 그런 말은 안 했을 텐데
긴장해 있었던 탓으로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의 울음 섞인 몇 마디가
나의 매든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들의 얘기로는...
밥솥에 있던 밥은 아침에 다 먹었고,
점심은 유치원에서 먹고,
다시 저녁때가 되어도 아빠가 일찍 오시질 않아
마침, 싱크대 서랍에 있던
컵라면을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선 안 된다는
아빠의 말이 생각나서
보일러 온도를 목욕으로 누른 후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붓고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출장 다녀온 아빠에게 드리려고
라면이 식을까 봐.. 내 침대 이불 속에
넣어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그런 얘길 진작 안 했냐고 물었더니
제 딴엔 출장 다녀 온 아빠가 반가운 나머지
깜박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싫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 저는
수돗물을 크게 틀어놓고
목놓아 실컷 울었습니다.
한참이나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와서는
우는 아이를 달래 약을 발라주고 잠을 재웠습니다.
라면에 더러워진 침대보와 이불을 치우고
아이 방을 열어보니 얼마나 아팠으면
잠자리 속에서도 흐느끼지 뭡니까?
정말이지 아내가 떠나고 난 자리는
너무 크기만 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는 그저 오랫동안 문에 머리를 박고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아내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이제 5년,
이제는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도 한데,
아직도 아내의 자리는 너무나 크기만 합니다.
일년 전에 아이와 그 일이 있고 난 후,
난 나대로 아이에게 엄마의 몫까지 더욱 더
신경을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아이도 나의 걱정과는 달리 티 없고 맑게 커 가는 것 같아서
아이에게 정말로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의 나이 이제 7살,
얼마 후면 유치원을 졸업하고 내년부터는 학교를 갑니다.
그동안 아이에게 또 한 차례 매를 들었습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전화가 오더군요.
아이가 그 날 유치원을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떨리는 마음에 회사를 조퇴하고
바로 집으로 와서 아이를 찾아봤지만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애타게 아이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놈이 놀이터에서 혼자 신나게 놀고 있더군요.
너무나도 아이에게 화가 나서 집으로 온 후 아이에게 매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단 한차례의 변명도 하지 않고, 잘못을 빌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날은 유치원에서는
부모님을 모셔 놓고 재롱잔치를 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몇 일 후,
아이는 유치원에서 글을 배웠다고
너무나도 기뻐하는 모습으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아이는 저녁만 되면 자기 방에서
꼼짝하지 않고 글을 써대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지 비록,
아내가 없지만 하늘에서 아이의 모습을 보곤
미소 짓고 있을 생각을 하니
난 또 다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일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겨울이 되고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올 때쯤
아이가 또 한 차례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 날 회사에서 퇴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찾는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 전화는 우리 동네의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우리 아이가 우체통에 주소도 쓰지 않고
우표도 부치지 않은 편지 300여 통을 넣는 바람에
가장 바쁜 연말에 우체국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끼친다고
전화가 온 것입니다.
서둘러 집으로 간 나는,
아이가 또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아이를 불러 놓고
다시는 들지 않으려던 매를 또다시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이는 변명을 하지 않고 잘못했다는 소리 뿐...
아이가 그렇게 맞는데도 변명을 하지 않자
난 아이를 때리는 것을 그만두고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받아 왔습니다.
편지를 가지고 온 후 아이를 불러놓고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하더군요...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 거라고...
순간 울컥하며 나의 눈시울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바로 앞에 있는 터라
아이에게 티 내지 않고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그럼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편지를 한 번에 보냈냐고...
그러자 아이는 그 동안 편지를 계속 써왔는데,
우체통의 턱이 높아서 자기의 키가 닿지 않아
써오기만 하다가 요즘 들어 다시 재보니,
우체통 입구에 손이 닿길래 여태까지 써왔던 편지를
한꺼번에 다 넣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전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에게 난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엄마는 하늘에 계시니깐 다음부터는 편지를 쓰고 태워서 하늘로 올려 보내라고...
그리고 그 편지들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주머니 속에서 라이터를 꺼내서 그 편지들을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이가 엄마한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태우던 편지들 중 하나를 들고 읽어보았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했어...
근데 난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가 엄마 생각날까 봐 아빠한테 얘기 안 했어.
아빠가 나 찾으려고 막 돌아다녔는데 난 일부러
아빠 보는 앞에서 재미있게 놀았어....
그래서 아빠가 날 마구 때렸는데도 난 끝까지 얘기 안 했어.
얘기하면 아빠가 또 엄마 생각나서 울면 어떻해...
나 매일 아빠가 엄마 생각나서 우는 거 본다.
근데 나 엄마 생각 이제 안 나....아니.... 엄마 얼굴이 생각이 안 나...
엄마 나 꿈에 한 번만 엄마 얼굴 보여 줘.... 알았지?...
보고 싶은 사람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자면 그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고 하던데,
엄마도 그렇게 해 줄 거지? ......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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