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4년 4월 4일(금) 저녁 8시 – 9시 10분
◦강사: 김윤태 세례자요한 신부님
◦주제: 신앙, 어떻게 믿을 것인가?
◦참석자: 210명
믿는 다는 것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즉 하느님께서 신앙을 우리에게 심어주지 않으시면 우리 능력으로 믿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느님을 믿어서 무엇이 좋은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왜 은총인가?
그것은 신앙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하느님 나라 (천국)에 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능력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계명을 열심히 지키는 것으로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 (루카 18,9-14)에서 보면 바리사이는 계명을 잘 지켰으나 세리는 그러지 못하여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고 기도한다. 예수님은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도 미사 중 자비송을 바칠 때 지금처럼 건성으로 하지 말고 세리처럼 진심으로 하느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시도록 청해야 한다.
구원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은총을 베푸시어 하느님 나라로 이끄는 것임을 잊지 말자!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죽은 다음에 가는 나라가 아니라 살아 있을 때 발을 담글 수 있는 나라이다. 완전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열심히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자!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는 죄를 탕감 받았다. ‘고통받는 주님의 종’(이사야서 53장)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나의 죄 때문에 벌 받지 않는 것을 보고 오히려 기뻐하신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이다.
우리는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은 사랑이심을 알 수 있다. 그 사랑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시면서 사랑하신 그 사랑이다.
성당에 나오면서 돈과 건강, 그리고 다른 소원을 들어달라고 청하지 말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시어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청하자.
가난한 라자로의 존재를 무시했던 부자(루카 16,19-31)와 같이 되지 말자. 약자에 대한 배려는 우리가 선행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고는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다. 기도할 때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성전을 크고 아름답게 지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우리 마음의 성전’을 크고 아름답게 지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주위에 하느님의 축복을 전해 주어야 한다.
교회가 교회이기 위해서는 ① 복음 선포, ② 전례, ③ 봉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잊지 말자! |